커피찾는남자 / Coffee Explorer
커피 온도 프로파일이 아닌, 수분 함량 프로파일 본문
그동안 로스팅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커피의 온도와 로스팅 진행 시간이었습니다. 온도는 비교적 쉽게 연속 측정이 되기 때문에 로스팅 프로파일을 구성하는 핵심 정보로 사용됩니다. 로스팅에서 온도와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로스팅 중에 커피의 수분 함량 변화와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간과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로스팅 과정에서 커피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커피의 수분 함량이 낮아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과 로스팅 머신의 설정에 따라 같은 온도 프로파일로 로스팅한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커피가 가진 수분 함량을 어떤 단계에서 어느 정도로 낮출지 완벽하게 조절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로스팅 머신의 에어플로우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조절해서 상대적인 변화를 주는 것은 가능합니다.
로스팅 도중 커피가 가진 수분 함량에 따라 라이트 로스팅에서는 잘 익지 않거나 삶은 것 같은 느낌, 반대로 자극적이거나 혀를 건조하게 만드는 느낌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다크 로스팅에서는 잘 안 익은 느낌이 만들어지기는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배출 온도에서도 쉽게 탄 느낌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말하는 구간별 컨트롤, 특히 마이야르 반응 구간을 늘리는 프로파일 변화는 ‘수분 함량을 좀 더 감소시킨 상태에서 캐러멜 라이징 구간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로스팅의 전체 시간이나 다른 구간에 대한 간섭없이 마이야르 반응 구간만을 독립적으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이야르 반응의 결과로 만들어진 성분이 늘어났는지에 대한 실험과 자료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이야르 반응을 너무 지연시키게 되면 캐러멜화 단계에서 커피의 겉면을 보호해줄 충분한 수분이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충분히 캐러멜화의 풍미를 만들지 못했지만, 이미 커피의 캐릭터는 좀 더 어두운 배출 포인트와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마이야르 반응에서 적정 수준까지 커피의 수분 함량이 낮아지지 않았다면, 캐러멜 라이징에서 더 높은 온도까지 올라가야만 커피가 익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로스팅 중 커피의 수분 함량은 온도처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부지런한 로스터라면 동일한 프로파일로 로스팅을 여러 배치 진행하면서 도중에 배출하는 타이밍을 바꿔가며, 로스팅 중 변해가는 수분 함량의 변화를 대략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마이야르 반응의 결과물이 늘어나는지는 아직 확실할 수 없지만, 적어도 커피의 수분 함량의 변화는 추적 가능한 요소입니다.
사실 우리의 로스팅이 까탈스러운 이유는 공간의 절대습도로 인해서 커피의 수분 함량 감소 패턴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온도와 부피의 공기가 커피를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절대 습도에 따라서 생두의 수분을 가져가는 효율에는 큰 차이가 납니다. 계절에 따른 한국의 실외 절대 습도는 4배 가까이 차이가 나며, 난방 등에 따른 로스팅 룸의 절대 습도 계절 차이는 8배까지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온도 중심의 로스팅 프로파일에서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모아서 풀리지 않는 로스팅의 신비가 있다면, 환경의 절대 습도와 커피의 수분 함량 변화를 통해서 그 비밀의 대부분은 풀릴 수 있습니다. 절대 습도를 항상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거나, 절대 습도가 달라졌다고 할지라도 그에 맞춰서 다른 변수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보 로스터는 로스팅을 하며 온도 프로파일 패턴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체계가 바로 잡힌 로스터라면 마땅히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컨트롤하기 뒤해서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