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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과 데미지_ 1. 수분의 역할 본문

기획/로스팅 & 스트롱홀드

로스팅과 데미지_ 1. 수분의 역할

Coffee Explorer 2020. 5. 14. 13:33

 

앞으로 로스팅의 기본기를 다룬 시리즈 연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로스팅을 이야기하려면 아무래도 잘된 로스팅에 대해 말해야 할 텐데요. 사실 잘 된 로스팅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 안된 로스팅은 비교적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로스팅에서 확연하게 잘못된 로스팅의 결과물을 우리는 다양한 디펙트(Defect)/결점이라고 부릅니다. 디펙트가 없는 커피라면 잘된 로스팅에 가까울 수 있죠.

 

그런데 디펙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생두가 가진 잠재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스팅에서 발생한 부정적인 요소를 '데미지(Damage)'하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사실 저는 이런 표현을 거의 사용해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로스터가 데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사실 로스팅에서의 데미지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사용하는 일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데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의 특성과 로스팅에서의 수분(물)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로스팅에서의 수분입니다.

 

 

수분과 식품

수분은 식품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많은 식품 화학책의 첫 장이 '수분'으로 시작하는 것이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의 끓는점은 누구나 알다시피 100℃입니다. 이는 1기압에서의 물은 100℃를 넘는 온도가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개별 물 분자는 100℃ 이상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물이 수증기가 되면서 겪게 되는 것 중에 로스팅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부피의 변화입니다. 1g의 물은 끓는 점을 넘어서면서 부피가 약 1,700배 정도 커지게 됩니다. 부피가 커지고 밀도가 낮아진 수증기는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운동이 많고 이동이 수월한 상태입니다.

 

100℃ 이하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 있어서 수분은 액체인 물로 존재할 때에 큰 밀도로 인해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체입니다. 하지만 물의 끓는점은 100℃로 커피 로스팅에서는 그리 높은 온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로스팅 초반 빈의 전체적인 온도가 100℃ 이하일 때 커피가 가지고 있는 수분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로 작용이지만, 빈의 온도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수분의 주 역할은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커피 로스팅에서 생두는 온도 상승과 수분 건조가 함께 이뤄지면서 빈의 온도가 100℃를 넘어가게 됩니다. 이때 수증기는 더 높은 온도로 가열될 수 있습니다.

 

 

로스팅과 수분

생두 내의 수분이 수증기화된다면 생두 내부에 상당한 압력이 형성된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가지고 있는 한 생두를 측정해보니 10개에 1.35g 정도의 무게를 가지는데, 한 알이 평균적으로 0.135g이라는 뜻이죠. 만일에 생두의 수분 함량이 10%라고 한다면 한 알이 가지고 있는 수분은 0.0135g이고, 해당 생두의 밀도가 700g/l 라고 한다면 생두 한 알의 부피는 약 0.19ml가 됩니다. 해당 생두가 수분을 전혀 잃지 않은 생태에서 전체적으로 끓는점을 넘는 온도가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0.19ml 부피인 생두 한 알 안에 22.5ml 부피의 수증기가 들어있다는 계산인데, 이때 수증기로 인한 생두 내부의 압력은 상당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피의 조직은 로스팅 머신의 드럼과 어느 정도는 단절되고 동시에 어느 정도는 연결된 상태입니다. 빈의 내부는 대체로 다공질 구조이지만 그렇지 않은 빈의 겉면 조직 덕분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화학적인 반응로와 같은 상태가 됩니다. 수증기의 부피 팽창은 빈의 크기를 어느 정도 키우는 동력이 되기는 하지만, 딱딱한 생두의 조직 때문에 그 정도로 빈의 부피가 커지지는 않죠. 덕분에 빈 내부에는 압력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높은 온도의 수증기는 생두 내에서 여전히 에너지 전달의 매개체로 어느 정도 역할을 감당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최대 10bar)

 

한편, 갈변 반응을 필요로 하는 조리 과정에서의 사실 수분은 마냥 반가운 존재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수분이 많은 물질에서 갈변 반응은 더디게 일어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커피 로스팅에서도 갈변 반응 전후로 적정한 범주로 수분 함량을 조절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스팅에서의 갈변 반응은 배출 포인트와 단계/시간상으로 가까운데, 수분 함량이 높은 상태로 원두를 배출한다면 커피는 익지 않은 느낌을 내는 향미를 가진 상태가 됩니다. 잘 구워진 것이 아니라 마치 삶은 듯한 느낌의 향미입니다. 저는 라이트 로스팅 위한 커피는 되도록 수분 함량을 낮추려고 하는 편이지만, 로스팅의 흐름을 적절히 만들어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반대로 수분 함량을 낮추지 못 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더 시간을 들여서 설명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수분 함량을 최소로 낮춰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은 배출 포인트에서 너무 낮은 수분 함량의 커피는 태워진 듯한 느낌(스모키하다고 표현하죠)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크 로스팅의 경우에는 수분 함량이 너무 낮아지지 않는 것을 목표로 로스팅합니다. 전체적으로 더 높은 온도까지 커피를 로스팅하지만, 오히려 적정한 수분 함량을 유지해야, 묵직하지만 스모키하지 않은 향미의 커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완성도 있는 로스팅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조건 수분 함량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수분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수분의 관리는 앞으로 이야기할 로스팅에서의 데미지와 직접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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