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커피와 로스팅

바리스타가 로스팅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Coffee Explorer 2019. 12. 30. 01:59

커피가 생두를 재배하는 농업부터 무역과 로스팅, 추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보니,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죠.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전문 영역을 설정하고 다른 사람과 협업을 통해 커피를 만들게 됩니다. 바리스타 자신의 역할인 추출에 무게를 두고 집중하게 될 텐데요. 커피 추출 역시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깊이 공부하고자 한다면 영원히 끝이 없을 수 있습니다.

 

저는 바리스타가 로스팅을 공부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스스로 로스팅한 원두를 파는 형태로 카페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스타가 로스팅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로스팅에 대한 이해는 커피에 대한 지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로스팅을 직접 하는 것의 강점은 커피를 다룰 때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된다는 것 같습니다. 직접 로스팅을 하면 전에는 잘 안 보이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과거에는 추출 전 상태의 원두를 보며 전체적인 로스팅 배출 포인트와 색상과 향 정도에만 관심을 가졌다면, 로스팅을 시작하고 나서는 로스팅의 시간이나 원재료인 생두의 컨디션까지 고려하게 되는 것이죠.

 

블렌드 커피는 다양한 커피 산지의 수확이나 한국 입하 시기를 알게 되면서, 수확 이후 생두의 컨디션의 변화로 인해 전체의 맛이 변한다는 것도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에티오피아 생두가 많이 들어간 블랜드의 경우 12월을 넘어가면서 급격하게 향미의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전체 블렌드 중에서 어떤 생두가 문제인지 알게 된다면, 애꿎게 로스팅을 탓할 게 아니라 생두에서 원인을 해결할 수도 있겠죠.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람/카페가 로스팅을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가 로스팅이 주는 경제적 이점이 발생하거나, 장기적으로 더욱 근본적인 역량을 구축하려고 한다거나, 품질 조절에 더 깊이 관여해야 하는 등의 목적에서 원하는 바가 맞아 떨어진다면, 그럴 때에는 스스로 로스팅한 커피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죠.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자가 로스팅은 오너의 성향에 따라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때도 많습니다. 향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섬세한 과정과 귀찮음을 극복해야 하는 단순 작업이 적성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 영역에 더 집중하는 것이 전반적인 경영에서 낫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겠죠. 그것이 정확한 판단일 때도 많습니다.

 

카페에서 가장 사용량이 많은 블렌드 로스팅은 때로는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자가 로스팅을 하더라도 브루잉을 위한 싱글 오리진 원두를 먼저 다루고 블렌드는 그대로 납품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로스팅을 잘하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로스팅 경험이 누적돼가야 할 텐데요. 로스팅하는 양이 적다면 로스팅에 실력이 늘지 않겠죠. 블렌드에 들어갈 다양한 생두를 구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 역시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커피익스플로러 사무실에 설치된 스트롱홀드 S7 PRO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팅은 커피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꼭 권해보고 싶은 공부입니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매장에서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로스팅을 배운다는 것은 커피에 대한 지식과 자부심을 채워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다루는 재료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돕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에 좋은 영향을 주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로스팅과 추출은 결국 재료에 적정한 에너지를 공급해서 향미를 변화시키거나 추출한다는 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리스타 경력이 있는 사람은 로스팅에 대한 습득력도 좋은 편이죠. 저는 로스팅 공부를 너무 나중으로 미루지 않는 편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로스팅 공부가 너무나 즐겁고 유익했습니다. 여러분도 로스팅을 아는 바리스타가 되셨으면 합니다.

 

- 글/사진 : 커피익스플로러(Coffee Explo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