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커피와 로스팅

로스팅과 투입 온도의 의미

Coffee Explorer 2019. 8. 14. 16:44

투입 온도는 다양한 요소가 합쳐진 측정치

현장에서 로스팅해보면 균일한 로스팅을 위해 같은 온도에서 생두를 투입해도 일관성 있게 로스팅이 되지 않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로스팅 머신이 보여주는 투입 온도라는 것은 드럼 내부의 특정 지점에서 생두를 비롯한 다양한 요소가 만들어내는 측정치입니다.

 

핸드드립에서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추출법에 관련해서 추출수의 온도를 궁금해합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추출수와 드리퍼, 분쇄 원두가 만들어내는, 실제 추출이 일어나는 드리퍼 내부의 현탁액 온도입니다. 다양한 요소가 합쳐져서 현탁액의 온도를 만들어냅니다.

 

 

출처 : http://coffeenavigated.net/roasting-coffee/

"로스팅 중인 생두 뿐 아니라, 보관 중인 생두 역시 온도가 입체적으로 존재한다."

 

로스팅에서도 투입 시의 열 환경은 다양한 요소의 조합으로 만들어집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생두의 온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두는 보통 서늘한 곳에 보관되다가, 로스팅 전에 더 높은 온도의 장소(A)로 이동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때 생두의 온도는 서서히 실내 온도와 평형을 이루게 될 텐데, A공간의 온도와 이곳에 보관된 시간에 따라 생두의 온도는 입체적으로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15℃에 보관되던 생두를 25℃의 장소에 10분간 방치했다가 로스팅 머신에 투입했을 때와 25℃ 공간에 30분간 방치했을 때 생두 내외부의 온도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생두 보관의 온도와 로스팅 직전 대기 공간의 온도 차이가 크면 클수록 이 부분은 로스팅 일관성에 더욱 영향을 많이 주는 변수가 됩니다. 온도가 높이지는 과정 중의 생두와 낮아지는 과정 중의 생두도 서로 다르겠죠.

 

로스팅 투입 전 생두와 실내 온도의 컨트롤

균일한 로스팅을 위해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는 작업은 생두의 온도를 적정하게 맞춰두는 것입니다. 보관을 위한 생두는 가급적 낮은 온도를 유지하지만, 너무 낮은 온도의 생두는 내부까지 충분히 익히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제 경우에 투입의 안정성을 위해 계절에 따라 20-24℃로 1-2일 정도 온도 안정을 거친 상태에서 투입하는 편입니다.

 

생두를 온도가 유지되지 않은 아무 곳에나 두는 것은 커피의 품질을 크게 하락시킬 수 있는 습관입니다. 생두를 평소에 잘 보관하다가도 이번에 로스팅할 여러 배치의 생두를 한 번에 꺼내서 로스팅 머신 옆에 쌓아두고, 로스팅을 시작한다면 이 역시 매우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로스팅 룸의 실내온도 역시 투입 환경의 중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로스팅 머신을 가동한 초기의 실내 온도에 비해, 가동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실내온도는 상승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같은 에너지를 공급해도 로스팅의 흐름은 좀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관여하는 로스팅 팩토리의 경우 여름철은 24-26℃, 겨울철은 22-24℃ 정도를 목표로 온도를 유지하는 편입니다. (여름의 높은 습도 역시 일관성을 해치기 때문에 제습기를 가동)

 

로스팅 머신의 예열(투입) 온도

과거, 로스팅 세미나와 서적을 살펴보면 로스팅 머신의 예열(투입) 온도가 높거나 낮을 때에 만들어지는 커피의 향미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설명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예열 온도만 바꿨더니 커피 향미가 달라졌다면서, 정확한 원인에 대한 진단이나 색도 측정조차 없이 예열 온도가 향미 발현이 아주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필자의 관점에서는 오해)

 

투입 온도가 5℃, 10℃ 수준으로 높거나 낮은 것은 그저 로스팅 머신 내부에 축적된 에너지의 차이일 뿐입니다. 머신에 따라 예열 온도 차이는 드럼 및 드럼 내부 공기 온도의 균형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로스팅 머신에서 드럼 온도는 더디게 변화하고 내부 공기 온도는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예열 온도를 낮추는 것은 드럼에서 전달되는 에너지의 전도 및 복사의 영향을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열 온도는 공급하는 총 에너지와 로스팅 추세에 영향을 주어서 로스팅의 결과물에도 어느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다만, 예열 온도가 무척 특별한 로스팅의 마법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예열 온도에 대한 과한 미신적 해석은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리하며

제가 사용하는 스트롱홀드 S7, S9 의 경우에 기계가 가진 재현력은 매우 우수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로스팅의 결과가 항상 균일하지는 않습니다. 로스팅에 영향을 주는 생두와 환경이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로스팅에서 투입 온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로스팅 균일성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 투입 온도라는 개념을 로스팅 머신이 알려주는 온도를 넘어서, 생두를 포함한 로스팅 룸의 전체적인 열 환경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장의 로스팅이 어려운 것은 대부분의 생산 현장이 환경 관리가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좋은 로스팅 환경을 기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만들어진 로스팅 공장에서는 로스팅의 일관성에 영향을 주는 외부 요인이 많지 않습니다. 실패하는 로스팅 배치가 줄어들게 되면, 로스팅이 그렇게 마냥 어렵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투입 환경을 잘 통제해서 오늘도 균일한 로스팅을 하실 수 있기를!

 

- 글 : 커피익스플로러(Coffee Explorer)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