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찾는남자 / Coffee Explorer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전, KBrC를 치르며 본문
얼마 전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전 중 KNBC 와 KBrC 두 종목이 카페앤베이커리페어와 함께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커피협회가 내셔널 바디의 역할을 맡아 한국의 국가대표선발전을 치러 왔는데요. 올해 초 SCAA와 SCAE의 합병 이후 SCA 한국 Chapter를 통해 국가대표선발전이 진행될 것이라는 내용의 공지가 2017년 6월 19일 자로 한국커피협회 홈페이지에 올라왔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대회를 준비하던 선수들은 상당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8월 3일, 앞으로 대회를 운영할 조직을 통해 대회의 공식 명칭이 Korea Coffee Championships로 공표되고 올해의 대회 일정이 공지되었는데요. 혼란 속에서도 대회를 무사히 치르기 위해 뒤에서 고생했을 많은 분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여러 가지 실수와 시행착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대회의 발전을 위해서 제가 선수로서 느낀 점을 써보려고 합니다.
"선수들에게는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간 한국커피협회가 국가대표선발전을 발전시키며 운영해온 것은 잘 한 것이라고 봅니다. SCA와 한국커피협회 간 어떤 식의 협의와 소통 끝에 이번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양측의 입장은 다르고, 외부자로써 객관적 사실을 완전히 알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원활히 협의하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선수들에게 혼란을 준 부분에 대해 사과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의 잘못은 없다."라는 것은 각 기관/단체 간 할 이야기이고, 어쨌든 선수들에게 조금은 미안해했어야 할 일 아닐까요?
선수들은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대회를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대회와 관련된 모든 것이 변경되면서 이로 인한 혼란이 있었습니다. 대회가 올해 치러질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생두 선정과 로스팅, 시연 준비를 하느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최근 수년 동안 참여해왔던 경험 많은 심사위원도 올해는 심사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지며, 대거 교체된 것으로 보입니다.
"스코어 시트는 연필로 작성되었다."
이번 대회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심사위원들이 스코어 시트를 작성할 때 연필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규정집 21.1.1 심사위원 테이블 기물 리스트에는 '연필'이라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인 차원에서 규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시험도 답안 작성 및 채점을 연필로 하지 않습니다.(초등교육 관계자에게 확인해본 결과, 시험지 작성은 연필로 한다고 하네요.) 세계의 다른 산업/영역의 대회도 스코어 시트를 연필로 작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점수가 심사 이후에 수정될 수도 있다는 의혹을 살 것이 분명한데도 연필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심사위원은 빠르게 진행되는 선수의 시연 가운데 많은 정보를 기록하기에 연필이 유리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정보는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점수'만큼은 반드시 현장에서 차후 수정이 불가능한 도구로 작성되어야 합니다. 온도가 내려가면서 커피 맛의 변화를 기록해야 하므로 연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는데요. 볼펜을 사용해도 온도가 높을 때와 보통, 식었을 때를 구분해서 충분히 점수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헤드저지가 아직 숙달되지 않은 심사위원에게 스코어시트를 정정하라는 요구하는 일이 있다는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요. 심사위원은 규정에 따라 대회 당일, 대회 시작 전에 커피 맛에 대해 기준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칼리브레이션을 갖습니다. 심사위원은 이 시간을 통해 최선을 다해 칼리브레이션 해야 합니다. 이후 실제 시연에서는 심사위원 각자가 최선을 다해 자신이 생각하는 점수를 주어야 합니다.
물론 칼리브레이션에 최선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미각은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도 어느 정도의 점수 차이에 대해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만일 칼리브레이션이 잘 된 것처럼 보이거나, 마치 이것이 대회의 공정성을 위한 것으로 오해하며 스코어 시트를 수정한다면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스코어 시트는 심사 시간 내에 작성하고 이후에는 수정되면 안 됩니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요청과 절차에 따라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공정성의 시작이고 흔들리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기틀입니다.
규정집 19.2.C 심사위원의 목표와 목적 부분에는 '중립, 공정성, 일관성 있는 심사를 위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중립, 공정성은 수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스코어 시트를 작성하는 것이 출발점이지 않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 심사위원도 내부에서 의견을 모아 WCE 측에 전달하셨으면 합니다. "그런 의지가 없으신 분이라면 심사위원의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저는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심사위원들은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본선의 디브리핑 시간에 이런 질문을 심사위원에게 던졌는데요. 심사위원 개인이 당장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성질의 질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심사위원분들께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을 모아서 표현해주세요."라고 부탁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WCE Rep에게 직접 질의하라는 조언을 옆에서 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대회장에는 WCE(World Coffee Event)에서 파견한 4명의 Rep(Representative)이 있었는데요. 선수들은 디브리핑(Debriefing)시간을 통해 자신들의 스코어 시트를 확인하고 자신을 심사한 심사위원이나 Rep에게 이에 대한 질의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Rep에게 심사에서 연필을 사용한 것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WCE에서 개최하는 7개의 모든 대회는 다 연필로 스코어 시트를 작성한다."는 단순한 답변을 했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지극히 사무적이었고,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전혀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는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디브리핑에서 그들에게 질문했던 또 다른 바리스타도 자신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에 대한 불만을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한국커피협회가 운영하던 시기에는 2014년을 기점으로 2015, 2016년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점수는 볼펜, 나머지 기록은 연필 등을 병행해서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년 KBrC 대회에서의 제 스코어시트를 확인해보니 아쉽게도 헤드저지는 여전히 연필을 사용했더군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이러한 부분은 한국커피협회가 적어도 2015, 2016년 대회에서는 잘 한 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규정에 어긋난 부분들-"
이번 KBrC 대회는 2016년 WBrC 규정을 번역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8월 4일 공지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2017년에 변경된 규정을 번역해서 사용하는데요. 해당 공지에 따라서 선수들은 2016년 규정대로 이번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규정에 어긋나거나 2017년 규정이 일부 도입되는 등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대회 본선 하루 전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는데요. 이때까지도 대회 운영에 대한 세부 내용이 다 정리되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미리 공지되지 않은 부분이 그 날 밤 12시 가까이 메일을 통해 전달되고 다시 수정되는 등의 문제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애초에 공지된 대로 철저히 2016년 규정대로 진행되던지,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통해 작년 대회와 달리 이번 대회에서 바뀔 부분을 강조해서 설명해야 했습니다.
1) 규격에서 어긋난 테이블 높이
규정집 10.2. A 는 테이블의 높이와 길이 너비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그 제한은 0.75-1.0m입니다. 하지만 이번 대회 때 준비된 테이블은 0.735m로 그 하한선을 벗어나는 규격이었습니다. 이번 대회의 테이블 높이는 키가 큰 선수들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했는데요. 시연 사진을 보면 한참 허리를 굽히고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작년까지의 대회는 테이블이 높아서 키가 작은 선수에게 불리할 수 있었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규정 범주 내였습니다.
2) 의무 서비스에서 출제된 원두의 색상
규정집 9.3.D 에서 원두는 분쇄상태 Agtron 55~70으로 로스팅 된 커피여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제가 가지고 있던 SCAA 인증 커피 색도계로 측정해본 결과 분쇄 색도가 Agtron 약 79 수준으로 규정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한 바리스타가 Rep에게 질의했는데, "세계 대회도 규정의 색상대로 로스팅 된 원두가 항상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해 불가능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규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이런 부분이 하나하나 지켜질 때라며 대회의 공신력이 생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3) 의무 서비스 원두 제공 시기 및 방법
본선 오리엔테이션 당일 밤(본선 대회 하루 전) 선수들에게 오리엔테이션에서 나왔던 질문들에 대한 정리된 답변이 들어 있는 이메일이 도착했는데요. 메일 안에는 새로운 규정(2016년 규정을 기준으로)이 추가되어 있어서, 일부 선수들이 여기에 반대하면서 의무 서비스의 원두 제공과 관련된 부분이 그 날 밤 재수정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016년 규정은 연습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350g의 의무 서비스용 커피 1봉지를 받아야 하는데요. 이것을 사용해서 연습 및 의무 서비스에서 커피를 내리면 되는 것이 기존 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 밤 도착한 이메일에는 연습 시간에 300g의 원두를 제공받고, 실제 의무 서비스에서는 같은 원두 300g을 추가로 받아서 시연에 사용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마도 연습 시간 내에 사용 원두가 다른 것으로 바뀌는 부정을 막으려는 조치인 것 같은데요. 앞으로는 이 규정대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규정 외의 부분들-"
1) 방어적인 스코어 시트
규정과는 무관한 부분이지만, 심사위원들의 스코어 시트가 너무 방어적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선수와 나누었습니다. 선수들이 시연에서 설명한 컵 노트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한 경우가 제법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복숭아'라는 표현을 선수가 사용했다면, '복숭아 느낌이긴 했는데 품질이 좋지 않은'이라던지, '생기를 잃은 복숭아' 정도의 문구로 선수의 설명에 방어적 비판을 한 것이죠.
선수가 설명한 해당 커피의 컵 노트에 공감할 수 없었다면, 심사위원 스스로가 느낀 컵 노트에 대한 설명이 보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복숭아 느낌보다는 살구의 느낌, 오렌지보다는 레몬그라스에 가까웠음-" 정도로 말입니다.
2) 의무 서비스 출제 원두와 로스팅
의무서비스에서 제공되는 원두의 로스팅은 더욱 일반적인 형태여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대회에서 출제된 원두는 어느 곳에서 로스팅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특이하게 로스팅한 것이었는데요. '이런 커피로 어떻게 추출할 수 있나 보자~'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브루어스컵 대회는 품질이 좋은 커피를 다루는 바리스타들이 역량을 겨루는 자리입니다. 카페 현장에서는 실패한 로스팅의 결과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은 원두로, 그나마 먹을만한 커피를 만들어내라는 요구는 대회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3) 칼리브레이션
심사위원들이 칼리브레이션에서 마신 커피와 그 커피에 대한 스코어 시트가 선수들에게도 제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런 부분은 세계대회의 규정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국내 대회 자체로 변화하기는 어려운 부분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커피의 기준이 오리엔테이션 등을 통해서 심사 위원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선수에게도 공유된다면, 상호 신뢰와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선수의 입장에서는 매번 바뀐다고 느끼는 대회의 흐름을 어림짐작으로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미리 경험해볼 수 있으니 대회 준비 최종 단계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전략을 다질 기회가 될 겁니다.
4) 결선 진출자 발표
본선에서 결선으로 진출한 선수를 발표하는 일정을 두고 선수들 사이에서 다양한 말이 있었습니다. 대개 본선 당일 즉시 결선 진출자 발표를 했었는데, 올해는 다음 다음날 발표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본선에서 시연했던 선수들은 긴장 속에 시간을 보내야 했고, 결선 진출자들 역시 집중해서 연습하기 힘들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KBrC 결선자 발표가 KNBC 와 꼭 동시에 결선 진출자 발표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당일에 결과가 나오는 것이 대외적 신뢰 확보와 선수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리하며
이상의 내용은 제가 바리스타 국가대표 선발전 중 브루어스컵 대회에 2년 간 출전하면서, 특히 올해의 대회를 치르며 경험하고 생각한 내용입니다. 글을 작성하며 가능한 특정한 사람을 비판하기 보다는 대회의 시스템에 대한 한계와 아쉬움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대회가 가지는 특수성을 이해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표현, 취합, 공론화되어야 언젠가는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커피업계에는 짧은 역사 동안 다양한 분열이 있었는데요. 적어도 국가대표 선발전만큼은 모든 기관, 협회, 회사, 미디어가 하나가 되어서 공정하게 운영하고 후원하는 날이 언젠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 의견에 대한 다른 생각, 선수나 기타 관계자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로이 덧붙여 주십시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 : 커피찾는남자 (Coffee Explorer)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