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추출

커핑이 항상 답일까?_커피에서의 균일함

Coffee Explorer 2019. 12. 13. 21:22

"커핑이 답이다."라는 말을 하는 로스터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커피라는 것이 결국 우리 기호에 맞는 향미를 커피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니, 결국에는 먹어서 만족감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최종적인 방법이어야 합니다. 다만 '커핑이 항상 답이 맞다'는 것에 대해 제 의견을 조금 보태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때로 커핑 덕분에 함정에 빠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커핑에서는 대략 개당 0.1g 전후의 원두 100여 알갱이가 모여서 한 컵의 향미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우리가 분쇄향을 맡고 맛을 보는 것은 이것의 평균적인 상태에 대한 평가죠. 더 깊이 커피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평균 뿐 아니라 '분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커핑의 함정이라기 보다 분포에 대한 이해 부족이 만들어낸 함정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2019 서울카페쇼 트리니타스 부스에서의 커핑(본문과 무관)

올 해 만난 어떤 커피는 커핑의 한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분쇄향(fragrance)는 매우 뛰어난 편이었지만, 종합적인 향미(flavor)는 텅 빈 느낌이었습니다. 조금 더 어둡게 로스팅했더니 텅 빈 느낌은 덜했지만 분쇄향 중에서 좋았던 느낌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얼핏보기에 '좋은 생두인데 내가 로스팅을 잘 못 했나보다!' 생각하기 쉬운 상황입니다. 아마도 이런 경우에는 생두를 구입하고 여러 차례 로스팅해본 이후에도 원하는 향미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한 백(bag)에 담긴 생두지만 스크린 사이즈를 비롯해서 재배고도, 밀도 등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생두는 로스팅해보면 1차 크랙의 소리가 지나치게 넓게 분포하는 편입니다. 해당 생두 중 일부만 뛰어난 자질을 가진 상태인데, 10-20% 정도의 좋은 생두가 가진 향미 덕분에 전체 커피에서 좋은 향미가 있을 거라고 착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로스팅 이후에 커핑하는 컵 단위로 향미를 파악할 것이 아니라, 개별 알갱이로 관심을 구체화하면 이런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스팅한 커피의 색상 분포를 눈으로 관찰한 이후에 한 알씩 커피를 깨뜨려 향을 맡아보는 작업을 해보면, 개별 알갱이의 로스팅 정도와 향미 분포에 대한 개념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숙련된 커퍼(Cupper)라면 커핑 시에도 이런 부분을 충분히 감안해서 맛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커피를 다루면서 처음에는 '로스팅/추출을 균일하게 한다.'고 생각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균일함'이라는 신화를 버려야 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애초에 자연계에 절대적 차원의 동일함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두 배치의 로스팅을 할 수 없습니다. 각 배치에 들어가 있는 생두는 다릅니다. 생두 알갱이별로 익음도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생두의 겉과 속을 동일하게 로스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분과 더 큰 입자를 동일하게 추출할 수 없습니다. 추출 직전에 해당 입자가 어디에 위치했는지에 따라서도 추출의 불균일함이 발생합니다. 완전히 동일한 두 잔의 커피 추출 역시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변별하지 못하는 다름을 만나면,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은 이것들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피에서 같음/균일함 보다 '어느 정도로 의도된 분포를 만들어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다시 커핑으로 돌아와서, 커핑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다양한 원두 알갱이가 만들어내는 특정한 대역을 가지는 커피 맛의 분포입니다. '이 커피는 이 맛이다'라는 평균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한 컵에 담겨있는 커피가 가진 향미의 분포를 파악하자.'는 마음으로 커핑에 임하는 것은 어떨까요.

- 글 / 사진 : 커피익스플로러 (Coffee Explo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