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이야기

커피, 책을 든 여행-

Coffee Explorer 2017. 2. 13. 18:24

책이나 기사가 말하는 이야기에 현장성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요. 때로는 저의 글이 그렇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과거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상당한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과 대화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들 대부분은 인생에서의 귀중한 경험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아프리카를 매우 잘 안다.'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아프리카라는 흔치 않은 대륙에 자신이 살고있다는 경험의 특수성이 오히려 '아프리카를 왜곡되게 이해하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년 전 광화문의 촛불 집회를 두고 광화문에서 직장 생활하던 사람들이 "내가 매일 보니깐 잘 아는데-"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만큼 "이 촛불의 시대적 흐름과 의의를 왜곡되게 기억하는 사람도 없겠다."는 판단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현장은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현장의 함정'은 오히려 넓은 시야를 가지지 못하게 만들수도 있습니다.


현장은 오히려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믿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역사는 쳇바퀴처럼 돌아가죠.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이 깨달았던 경험의 근본 원리는 우리의 현재 상황에 맞춰서 적용 가능한 부분이 많습니다. 책에 기록된 역사와 지혜가 없다면 역사의 진보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한 명의 개인이 현장에서 얻는 경험은 '사실'일 수 있지만, '진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나의 경험이 아주 특수한 경우일 수 있습니다. 내가 어울려 지내는 사람들에게서 공유된 경험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기 때문에 내리게 된 공통의 결론일 수 있습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말인데요. 우리는 스스로 사회의 큰 흐름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수년 전부터 등록된 인사말은 "책상은 세상을 바라보기에 위험한 장소다."라는 영국 소설가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글귀인데요. 책상에서만 바라본 책의 교훈들은 현장성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현장에만 존재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든 여행'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말에 '신문'을 더해, 책과 신문을 손에 든 현장이 우리 삶에 균형을 잡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커피 여행에도 책과 신문이 필요합니다.

-글/사진 : 커피찾는남자(Coffee Explorer)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