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이야기

다시 한번 라이트 로스팅 커피를 말하다

Coffee Explorer 2017. 1. 23. 01:32

커피의 맛은 분명 기호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특정 집단 안에서 선호가 집중되는 포괄적인 경향성이 어느 정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2017년 현재의 한국 커피 시장을 포괄적으로 봤을 때, 적어도 현재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라이트하게 로스팅한 커피가 생두의 개성을 잘 표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라이트 로스팅은 적어도 익지 않은 커피와 다를텐데요. 그것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의가 모호하다고 하더라도, 2010년 초반 한국의 로스터리 카페에 한바탕 라이트 로스팅 바람이 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흐름이 길게 이어지지 않으면서, 이제 라이트 로스팅은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트랜드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7년에 저는, 다시 라이트 로스팅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일선 카페에서는 현재보다 상대적으로 더 라이트하게 로스팅하는 것이 해당 생두의 캐릭터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소비자가 그런 커피를 싫어한다며 "어쩔 수 없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접할 때면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한 잔의 커피를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요소들의 균형입니다.


저는 2010년 초반 대부분의 라이트 로스팅된 커피들은 로스팅만 라이트하게 되었을 뿐, 그런 로스팅에 적절한 추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로스팅 할 때는 추출을 고려해야 하고, 추출을 할 때는 로스팅 상태를 고려해야만 합니다. 라이트 로스팅 이후 추출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당연히 신맛은 자극적이었고, 이로 인해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죠.




현재의 한국 커피업계를 감히 평가하자면, 세계 최고 수준의 로스팅 실력을 갖춘 로스터들이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다만 충분하지 않은 스페셜티 커피의 규모로 인해, 품질 좋은 생두 수급 시 가격적인 매리트가 크지 않은 약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죠. 하지만 적어도 에스프레소 기반의 우유를 다루는 기술이나 라떼아트를 하는 실력으로 보면 한국 바리스타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하기 충분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추출의 경우는 에스프레소와 브루잉 커피 모두에서 그렇지 않은 편입니다. 추출의 기술이 좋다는 것은 재현성있게 원두가 가진 개성, 향의 강도, 입에 적절한 농도와 맛을 갖도록 수율을 복합적으로 콘트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특히나 브루잉 커피에 있어서 추출 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은 과거 일본식 커피의 흔적이 아닌가 합니다.




브루잉 커피의 추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습니다. 추출 수율은 '추출된 커피 성분의 양(g)/사용한 원두의 양(g)' 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요. 커피 추출의 수율에 따라 상대적으로 낮은 수율에서는 조금 더 신맛이 살아있다면, 수율이 높아질수록 단맛이 조금 더 증가하고, 쓴맛을 내는 성분들이 점점 추출되며 신맛을 가리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물론 커피 추출의 수율은 높을수록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바리스타가 얼마나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조절할 수 있냐에 따라 같은 원두를 사용한 커피지만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는데 핵심적인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커피를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의 물을 사용했냐에 따라, 같은 수율이지만 서로 다른 농도의 커피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농도가 진할수록 해당 수율에서 표현되는 맛의 개성이 더 강해지는 편입니다. 라이트 하게 잘 로스팅한 커피는 더 높은 수율에서도 쓴맛이 상대적으로 덜 나는 편인데요. 반대로 같은 수율에서는 신맛이 도드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율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분쇄도가 더 가늘어야 하는데요. 가늘어진 분쇄도 만큼 커피의 농도 역시 증가합니다. 이 때 사용한 원두의 양 대비 물의 비율을 더 크게해야(물을 많이 사용해야) 더 높은 수율임에도 불구하고, 마시기에 적정한 농도를 커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물을 사용하다 보니, 전통적 핸드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다 보면 커피빵에 물이 차오르는 현상(소위 말하는 물바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일본식 혹은 전통적인 방식의 커피 추출에 익숙한 바리스타들은 이런 시각적인 현상을 보면 '내가 추출을 잘 못하는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커피를 조금 안다고 하는 손님들이 이런 추출의 모습을 보면서 바리스타들의 실력을 섣부르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바리스타는 추출에 사용하는 물의 양을 줄여서, 물바다를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커피의 수율은 낮아지고, 농도만 진한 커피가 만들어지는데요. 라이트 로스팅한 커피의 경우 이런 식으로 어느 정도 선을 넘게 되면, 자극적인 신맛(sour)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배격을 당할 개연성이 높은 커피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커피에 있어 신맛은 잘 다루지 않으면 없으니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목표, 상대적으로 농도는 적절히 낮아서 부담없이 마실 수 있으면서 수율은 상대적으로 조금 높은 편인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커피 브루잉에서 발생하는 물바다 현상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전통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겼던 추출의 시각적 현상들에서 어느 정도 자유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약 3년 전 호주의 바리스타 맷 퍼거(Matt Perger)가 말하던 'The Downward Spiral Of Death'이라는 내용의 글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https://baristahustle.com/the-downward-spiral-of-death/

1. 커피의 산미가 강함

2. 로스팅을 다크하게 함

3. 커피가 더 잘 녹게 됨

4. 산미가 낮아지지만 맛이 좋지 않음

5. 추출의 양을 줄임 

6. 저수율의 커피

7. 자극적인 산미가 됨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음의 과정을 따라 가야 하는데요.

출처 : https://baristahustle.com/the-downward-spiral-of-death/

1. 산미가 너무 약함

2. 로스팅을 라이트하게 함

3. 커피가 덜 녹게 됨

4. 산미는 높지만, 맛의 발현이 부족함

5. 굴절계로 측정 후 추출 수율을 향상 시킴

6. 단맛이 증가하게 됨 

7. 균형잡힌 커피가 됨




한국의 상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악순환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새로운 트랜드를 따라서 너도 나도 라이트 로스팅 함

2. 추출에서 커피빵을 유지하려다 보니 원두 대비 물이 양이 적은 레시피를 사용

3. 고농도로 커피가 추출됨

4. 동시에 낮은 수율이기 때문에, 커피가 자극적인 신맛(sour)으로 표현됨

5. 이미 진한 커피기 때문에, 분쇄도를 작게 해서 추출된 성분의 양을 늘리는 방향으로 추출을 더 조절하지 못함

6. 고농도/저수율 커피를 맛본 대중들은 자극적이라며 싫어함

7. 카페가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산미를 강요하지만 입맛이 변하지 않음

8. 대중은 결국 자신이 커피 맛을 모르는 막입이라고 생각함(다 똑같이 진하거나, 시큼-)

9. 대중은 그냥 구수한 맛에 먹는 아메리카노만이 자신의 취향이라고 생각함

10. 손님이 좋아하지 않으니, 라이트 로스팅을 고수하는 로스팅 카페는 서서히 줄어듬

11. 로스터리 카페는, 대중이 커피 맛을 모르니 더 좋은 품질의 생두 사용를 쓸 필요는 없다고 판단

12. 생두 회사는 좋은 생두를 가져와도 팔리지 않으니, 저렴한 가격을 우선 순위에 놓고 생두 수입을 결정

13. 좋은 생두의 수입 물량이 많지 않으니 생산국에서 우대받지 못하게 됨

14. 한국으로 수입되는 생두의 품질은 더 하락하게 됨

15. 품질이 좋지 않은 생두를 라이트 로스팅해봤자 결점 성향만 강해지므로, 더 강하게 로스팅

16. 강하게 로스팅한 커피다 보니 수율을 낮춰서 추출함

17. 쓴맛을 감추기 위해서 추출 완료 후 물을 더하는 방식의 레시피를 사용하게 됨



물론 한국의 모든 커피 회사나 카페가 동일한 상황을 겪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모든 상황들을 이 글이 담아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산미가 조금은 있지만 충분히 산미가 상쇄될 수 있는 방향으로 로스팅할 수 있는 머신이 등장하거나, 특수한 로스팅 프로파일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상황에서라면 다시 한번 추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대중을 이렇게 길들인 것에는 카페 오너, 바리스타들의 역할(책임)이 있습니다. 라이트 로스팅 커피는 단지 덜 익혀서 신맛이 강한 것이 아니라, 라이트 로스팅에서 나오는 아로마와 함께 이를 받쳐주는 충분한 단맛과 신맛의 밸런스가 좋은 커피를 말하는 것이니깐요.


많은 카페 오너/로스터들이 커피는 취향의 문제라며 자신이 현재 사용하는 방법을 고수합니다. 물론 취향의 부분은 존중해야겠지만, 문제는 적어도 최소한 로스팅과 추출에 있어서 핵심 요인들을 자유자재로 콘트롤 할 수 있고, 그렇게 해본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주장해도 늦지 않습니다. 섣부른 취향/철학/방식의 주장은 자신을 자기만의 우물 속에 던져넣기 십상입니다.


커피찾는남자 에디터는 라이트 로스팅이 모든 커피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의 한국의 커피산업을 포괄적으로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조금은 더 라이트하게 로스팅하며 추출에서 균형을 갖추는 방향을 제안하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하루에도 3-4잔씩 마시는 커피라면 산미가 상당히 절제되어 있는 편이 혀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루에 1잔 정도 마시는 특별한 커피를 말한다면, 최소한의 산미가 단맛을 강화시킬 때 혀가 느끼는 감각이 더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봤으면 합니다. 특별히 품질이 좋은, 그래서 자신만의 맛과 향을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생두라면 조금은 더 가볍게 로스팅해서 그 차이들을 명확하게 한 잔의 커피로 표현하면 어떨까 합니다. 물론 한 잔의 커피로 완성도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추출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죠.


커피찾는남자는 현재 직접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에 대해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차례의 팝업카페와 각종 교육의 자리를 통해 제가 지향하는 커피를 맛보여 드리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2018년 정도에는 저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형태의 카페도 준비해서 여러분을 초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사진 : 커피찾는남자(Coffee Explorer)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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