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찾는남자 / Coffee Explorer
글이란 문자로 하는 말이다. 말하듯 쓰라. 본문
이태준의 <문장강화> 리뷰
“글이란 문자로 하는 말이다.
말하듯 쓰라”
감상.
말하듯 문자로 쓰는 것을 우리는 글이라고 한다. 장애가 있지 않다면 모든 사람이 말을 할 수 있고, 대부분은 곧잘 자신의 의사를 말로 원활하게 남에게 전달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말을 잘 하는 모든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 중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소수이다. 말을 문자로 옮긴 것이 글이지만, 말을 잘 하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은 같지 않다. 글을 쓰는 사람은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더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오랜 세월 동안 우리에게 답이 되어준 책이 있다. 바로 이태준의 문장강화(文章講話)가 그것이다.
문예지 ⌈문장⌋에 연재되고, 1940년 단행본으로 간행되면서 ⌈문장강화⌋로 출간된지 어느새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이 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이태준은 구석구석 많은 예문들과 함께 깊고 섬세한 문장력으로 보다 넓은 문장의 세계를 제시한다. 이 책은 문장작법의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 핵심적인 내용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말하듯 쓰라는 도입부의 주장은 책 전체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이다. 저자는 문장작법의 의의부터 각 종류의 문장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각종 문장에서의 주의할 점을 요약하고 있으며, 퇴고 및 문체 등 글쓰기 훈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친근하게 짚어주고 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글쓰기에 대한 교본 중 하나로 이 책을 꼽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마음을 움직인 예문.
바로 그저껜가두 전화가 왔는데 낮잠을 자다 머리도 쓰다듬지 않고 달려온 옥희는 수화기를 떼어들기가 무섭게 요새는 대체 게서 무슨 재미를 보구 있기에 내게는 발그림자두 안하느냐고 내일이라도 곧 좀 올라오라고, 제일에 돈이 없어 사람이 죽을 지경이라고, 그래 내일 못 오더라도 돈은 전보환으로 부쳐주어야만 된다고, 그럼 꼭 믿고 있겠다고 한바탕 재껄이고 나서 응 그럼 꼭 믿고 있겠수 하고 전화를 끊기에 미쳐서야 생각난 듯이 참 몸이 편찮다더니 요새는 좀 어떻수 하고 그런 말을 하였다고, 그는 그 계집의 음성까지를 교묘하게 흉내 내어 내게 여실히 이야기하였다.
- 박태원의 ‘거리’에서
이 문장은 먼저 내가 감히 이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빠른 속도감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문장과 문장을 마침표로 끝맺지 않으면서 ‘...고’를 연달아 사용하면서 계속해서 담화를 묘사해 나간다. 실제의 대화에서 이대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을텐데,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문장의 속도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참으로 대담한 글인 것 같다. 두 번째는 문체이다. ‘그저껜가두’,‘발그림자두’,‘재껄이고 나서’등 등장인물의 성격이 그래도 드러나는 듯한 문체의 사용이 매우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중간에 담화가 섞이는 긴 문장을 써본 적이 없는지라, 박태원의 이러한 문장은 매우 인상적으로 보였다.
어떤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아저씨는 나더러 뒷동산에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곧 가자고 하니깐 “들어가서 어머님께 허락 맡고 온” 하십니다. 참 그렇습니다. 나는 뛰어들어가서 어머니께 허락을 맡았습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다시 세수시켜주고 머리도 다시 땋고 그리고 나를 아스러지도록 한번 몹시 껴안았다가 놓아주었습니다.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온.” 하고 어머니는 크게 소리치셨습니다. 아마 사랑 아저씨도 그 소리를 들었을 게야요.
-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위의 글 역시 문체와 표현이 인상적이다. 먼저는 아이의 시점에서 보고 들은 바를 전해주게 되는데, 마지막에 나온 ‘게야요’의 표현은 참으로 독창적이고 신선하다. 또한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이 사용하는 ‘...온’의 표현은 아이를 통해 말을 전하려는 어른들의 말이 재치있게 표현되었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뭇차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운문은 긴 글이 아니다. 운문에서는 많지 않은 문장과 단어를 사용하기에 그만큼 단어의 선정이 중요한 것 같다. 김소월은 특이한 단어들을 스스로 발견해서 사용하고 있다. ‘사무치게’도 아닌 ‘사뭇차게’는 그 그리움의 적절한 무게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ㄹ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의 반복도 인상적이지만 또 하나, ‘이제금’이라는 표현의 발견도 대단하다. ‘이제까지’,‘이제까지금’,‘이제금’등 저자의 말을 빌자면 ‘향토적, 민요적’인 자기만의 정서가 독자에게 명확하고 섬세하게 전달되고 있다.
그리 간 후의 안부 몰라 하노라 어찌들 있는다 서울 각별한 기별 없고 도적은 물러가니 기꺼하노라 나도 무사히 있노라 다시곰 좋이 있거라
정유 9월 20일
-선조대왕의 친서, 이병기 소장
편지글의 예시이다. 이 글은 난리로 인해 궁궐을 떠나있던 선조대왕이 다른 피난처에 있는 딸에게 쓴 글이다. 한글로 씌어져서 쉽지만 그 기품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 대왕의 쓴 글 답다. 또한 고풍스러운 표현이 눈에 띄인다. ‘다시곰 좋이 있거라’
생일초대 편지
벌써 여름이야.
명이 참말 오래간만이지.
그래 그동안 잘 있었구 또 심심하지는 않았어. 난 꽤 심심하구먼. 글쎄 단 석 달 남짓한데 벌써 이렇게 심심하니 큰일 났어.
요전번에 남숙이를 길에서 만났구먼. 아주 새색시 티가 나던데. 그러니깐 벌서 미씨즈가 셋이지. 그리고 영희도 약혼을 하였대. 남자는 명대 법학사라고. 아주 ‘케이끼’들이 좋은데 우리들만 납작꽁이야.
오는 목요일이 내 생일날야. 좀 와요. 모두 모여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구. 순경이한테도 알려주고 옥순이, 희영이, 순남이한테도 기별을 했으니까 오래간만에 모두 모일 거야.
어머니께 특청을 맡아서 이날은 아주 맘껏 놀기로 하였으니 떠들 준비를 맘껏 해가지고 꼭 와요.
그럼 그동안 싸두었던 이야기는 모두 그날 하기로 하고 이만 총총.
7월 초6일 길순
- 백철이‘여성’에 편지형식으로 쓴 것
또 다른 편지글이다. 꽤 오랜 세월 전에 쓰여진 편지글로 보이는데, 어감들은 참으로 정겹다. 예나 지금이나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의 내용은 이렇게 격없이 가볍고 친근한 것인지, 글만 보아도 친구 중 누가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좀와요’의 짧은 한마디에서 하고 싶은 모든 말이 다 전달된 것 같아서 인상적이다.
벌써 유리창에 날벌레 떼처럼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엉키고 또그르 궁글고 홈이 지고 한다. 매우 간이한 풍경이다.그러나 빗방울은 관찰을 세밀히 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오늘 유유히 나를 고늘 수 없으니 만폭의 풍경을 앞에 펼칠 수 없는 탓이기도 하다. 빗방울을 시름없이 들여다보는 겨를에 나의 체중이 희한히 가벼야웁고 슬퍼지는 것이다. 설령 누가 나의 죽지를 핀으로 창살에 꼭 꽂아둘지라도 그대로 견딜 것이리라.
- 정지용의 ‘비’에서
정지용의 글에서 단연 ‘미끄러지고 엉키고 또그르 궁글고 홈이 지고 한다’부분의 세밀하고 독특한 묘사가 눈에 띄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나 또한 빗방울을 관찰하고 싶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빗방울이 화자에게 저런 글을 쓸 수 있는 영감을 준 것일까? 나 역시 빗방울을 소재로 하는 글을 한번 써보고 싶은 마음을 준 글, 그만큼 남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좋은 글이 아닐까?
너무 더웁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하도록 더웁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보는 재간도 없으리라.나는 그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 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는 않는다.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 말기로 하자. 그저 한량없이 넓은 초록색 벌판, 지평선, 아무리 변화하여보았댔자 결국 치열한 곡예의 역을 벗어나지 않는 구름, 이런 것을 건너다본다.
지구 표면적의 100분의 99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 그렇다면 지구야말로 너무나 단조무미한 채색이다.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 나는 처음 여기 표착하였을 때 이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 되어서 이 일망무제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푸르냐. 하루 왼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와 같이 만족하면서 푸른 채로 있다.
-이상의 ‘권태’에서
제목인 ‘권태’만큼 권태로움의 정서들이 글에서 잘 나타난다. ‘너무 더웁다’로 시작해서는 시냇물마저 서늘한 소리는 내는 재간이 없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권태로움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한 이런 권태한 정서는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 글을 지금 쓰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또한 이어지는 정서를 그대로 기록해버리는 것 역시 과감하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이런 저런 것을 바라보다가 저자는 시선 속에서 말 할 수 있는 ‘푸름’이라는 다른 주제를 만나게 되고 또한 이렇게 사고의 흐름이 이어지게 된다. 과감하고 솔직한 감정의 표출이지만 자연스레 다음의 정서로 연결이 되고 있으며, 이어지는 권태로움이 눈을 따라 계속 전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재외 혁명동지 환영문
이태준
나는 재내 3천만의 하나로서 개선입성하는 동포, 특히 혁명동지 여러분을 환영하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역사 오랜 민족으로 흥망 없는 민족이 있으리오만, 이번 우리처럼 외적에게 심각한 제압을 받은 민족은 인류사상에 그 유가 드물 것이다. 같은 피 압박민족에서도 우리는 그 환경과 비중을 달리해, ‘민족자결’을 표방하던 국제연맹 시대에도 우리 수족은 풀리지 못하였었다. 안으로는, 민족의 최후재인 모어와 예속까지도 소멸되는 위기를 직면했었고, 밖으로는, 국경 이북과 자유도시 상해까지도 적세 권내에 들어, 세계는 넓다 하나 우리 혁명동지는 기들 하늘이 없고, 칼 짚을 땅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자유란 백년하청을 기다림같이 망막한 것이었는데, 문득 오늘, 이 해방과 자유의 종소리란 과연 무슨 꿈인가!
위 글은 본 책의 저자인 이태준이 쓴 재외 혁명동지 환영문이다. 식사문의 예로 등장하고 있으며, 참석자 일동에게 그 기분을 고조시키는 데에 의의가 있기에 그에 알맞은 적절한 형식들이 눈에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충분히 비장한 단어를 사용해서 청중에게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주고 있으며, 그 중 특히 밑줄 친 ‘문득 오늘, 이 해방과 자유의 종소리란 과연 무슨 꿈인가!’부분이 인상적이다. 평이한 어체로 ‘해방과 자유의 종소리가 오늘 들린다!’라고 쓸 수도 있지만, ‘문득 오늘’로 충분한 긴장을 마련한 이후에 ‘과연 무슨 꿈인가!’로 감격과 기대감을 충분히 고조시키고 있다.
그믐달(소품)
나도향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으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승달은 세상을 후려삼키려는 독부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 한등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이 없을 것이다.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과 같은 달이다.
인격이 없는 그믐달에 감정을 이입한 저자의 애정이 잘 전달된다. 달 중에서는 그다지 대단치 않은 겨우 그믐달을 그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믐달과 자신의 관계를 글을 통해 설정하고 보여주는데, 글의 컨셉과 많은 비유들이 이 글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는다.
2006년 어느 날. 커피찾는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