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찾는남자 / Coffee Explorer
공정무역 이야기 1_불공정 무역 본문
공정무역의 시작, 불공정 무역
공정무역이 시작된 것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에서 입니다. 과거의 무역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자각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생겨났는데요. 불공정 무역을 인정하자는 것에서 공정무역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직관적인 설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 막스 하벨라르 (Max Havelar)
사진 출처 : http://www.bibliothekendrenthe.nl
모르는 단어가 나오니 처음부터 어렵게 느끼지시죠? 최초로 인증마크를 내놓은 단체이자 공정무역 커피 브랜드이기 때문에 막스 하벨라르 재단을 빼고는 공정무역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 겁니다. 사실 막스 하벨라르는 1860년 네덜란드에서 출판된 식민지의 사정을 폭로한 물타툴리(Multatuli, 본명: 데케르, Eduard Douwes Dekker) 소설의 이름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난 데케르는 어린 시절 동인도(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살면서 지방관으로 살며 가혹한 식민지 정책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다 전임자의 비리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위협을 받고 정직을 당하게 되면서 이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사표를 낸 후에 네덜란드로 귀국하게 되는데요. 귀국 후 신문기사와 팜플릿을 통해 식민지의 실태에 대해 고발을 계속하지만, 이런 방식의 투쟁이 크게 반향을 얻지 못하자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 소설의 이름이 바로 '막스 하벨라르'인데요. 그는 이 글을 통해 네덜란드 정부의 식민지 정책을 얼마나 가혹한 방식으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폭압하고 착취했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출판 이후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고국이 누군가를 착취한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했는데요. 주식인 쌀을 대신해서 초기 무역 시장에서 상품 가치가 있는 커피와 차만을 생산해야 했고, 수확이 나쁘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고통에 온갖 부패와 폭압으로 가득했던 현지 관료의 삶은 네덜란드에 살던 사람들로써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원 거류민들을 강요해서 그들의 주식이었던 쌀 대신 상품 작물인 커피와 차를 생산하게 했던 점은 오늘 날까지도 종식시키지 못하는 제 3세계의 빈곤을 만들어 낸 원죄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사진 출처 : http://www.bibliothekendrenthe.nl
내부 고발자로써 어려움을 겪던 그는 고국에서 직업을 얻지 못한 채 유럽 전역을 방랑하며 집필과 연설을 하다 가난하게 생을 마감했었는데요. 소설 막스 하벨라르를 쓰던 시기 그가 스스로 선택했던 필명 ‘물타툴리’는 라틴어로 "수많은 고통", 혹은 “나는 크나큰 고통을 겪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에 저자의 필명 물타툴리는 네덜란드 유명 문학상과 박물관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막스 하벨라르, 공정무역 커피의 시작
한편, 1988년 국제 커피 가격의 붕괴하면서 커피(생두)의 판매 가격이 생산 원가보다 낮아져 많은 커피 재배 농가가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는데요. 냉전 시대 미국은 중남미와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국제 커피 협정(ICA, International Coffee Agreement) 을 체결하여 전략적으로 커피의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1980년 후반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 이후, 더이상 그럴 이유가 없었던 미국이 일방적으로 커피협정을 탈퇴했습니다. 이 때 멕시코의 소규모 커피 생산 조합에서 생산한 커피에 막스하벨라르 마크를 붙여 네덜란드에서 판매하게 되면서 최저보장가격으로 커피를 구입하는 막스 하벨라르 커피 상표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다음 글을 통해서는 공정무역 단체들의 보편적인 주장과 역할을 소개한다면, 그 다음 글을 통해서 무엇이 한계인지 좀 더 현실적인 부분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물타툴리가 남긴 문장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할까요?
There is only one evil, one crime, one sin: lack of heart.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악, 범죄, 죄악만이 있다. 그것은 심장의 부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