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공간

마음은 이미 콩밭에, 해방촌 콩밭커피로스터

Coffee Explorer 2014. 10. 31. 15:22


저에게는 가을이 오면 늘 생각나는 길이 하나있어요.


매년 가을, 하루 쯤은 시간을 내서 이 길을 걷곤하죠. 사진만 보고 어딘지 아시는 분도 계실까요? 이 곳은 남대문에서 남산을 돌아 한강으로 갈 수 있는 소월길입니다. 요즘 인근 경리단길 붐이 한참이라고 하던데 커피찾는남자는 그런 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정말 멋진 가게들은 갑작스레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가게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군요.











제가 소월길을 지나 방문한 곳은 해방촌입니다. 해방촌은 1945년 광복을 하면서 월남한 실향민과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임시로 모여 살던 거주지를 가르키던 말로 정확히 한 지명만을 의미하지만은 않아요. 구로구 온수동 인근도 해방촌으로 불리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해방촌이라는 지명이 익숙한 곳은 아마도 용산고등학교부터 남산타워 아래까지의 지역이 아닐까 해요.






이렇게 남산타워가 가까이 보이는 동네, 해방촌 성당 바로 앞에는 작고 매력적인 카페가 있습니다.






너무나도 특이한 이름의 '콩밭커피로스터'인데요. 사실 처음엔 카페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렸었죠. '저게 뭐지?'하며 다시 길을 돌려 돌아와보니 카페였어요. 그 때의 충격이란! ^^






오늘의 주인은 해방촌의 숨겨진 보석 같은 카페, 콩밭커피로스터입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해야할 일은 결재서류를 확인하는 것이죠. 한번 열어 볼까요?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 저렴한 커피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호사 커피, 향신 라떼, 월남 커피, 월남 라떼 등등 생소한 커피의 이름들이 머리를 살짝 어지럽힙니다. 그러나 행복한 고민도 잠시 제가 선택한 것은 월남 커피였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가게를 이리 저리 둘러봅니다.






거리가 보이는 창 측에 잠시 외투와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콩밭커피로스터는 이렇게 단아한 모습입니다. 가게에 비해서는 조금 커보이는 듯한 로스터 한 대와 그 옆에 아주 작은 로스터 한 대. 브레빌 사에서 나온 작은 에스프레소 머신 한 대와 에스프레소 머신보다 1.5배는 더 키가 큰 그라인더(콤팍)가 있구요. 빈티지 오디오와 LP 플레이어가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콩.밭.커.피.

무슨 뜻일지 궁금하시죠?


사장님이 칠갑산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고 하시던데요. 칠갑산을 보면 '콩밭'이 나오죠? 


<칠갑산> 조운파 작곡/작사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그래서 그런지 사장님 자리에는 아낙네라는 명패가 딱 놓여져 있죠.






또 "마음이 콩밭에 가있다"는 얘기를 어려서부터 많이들 듣고 자랐는데요. '콩밭'하면 왠지 뭔가 마음이 먼저 가있을만한 이유가 있는 곳의 상징이지 않나요? 또 따지고 보면 커피도 어차피 '콩'이기 때문에 로스터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죠. 콩밭에서 길러낸 콩을 볶아서 이렇게 매장에서는 원두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 곳은 마음이 편안한, 따뜻해지는 곳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대의 로스터 중 한 대는 조금 콩밭에 비해 크고, 한 대는 딱 콩밭에 어울릴만한 크기네요. 조금 큰 녀석은 브랜드를 달지 않는 녀석치고는 제법 스마트해보였는데요. 바로 옆에 있던 PC 로 온도 프로파일을 전송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분을 아낙네라고 부르는 듯 하더군요. '말도 안돼! 당신은 남자잖아-'라는 딴지를 좀 걸어보려다 참습니다. ㅎㅎ 아낙네가 열심히 커피를 만드는 동안 저는 좀 더 카페를 구석구석 둘러봅니다.






제가 주문한 월남 커피에 사용될 재료들이군요. 연유는 그냥 한국산을 사용할 줄 알았는데 베트남산을 쓰는가 보네요. 다음 번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아낙네에게 베트남에 다녀온 적이 있는지를 여쭤보고 싶군요.





이렇게 재봉틀이 테이블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곳이 해방촌이다 보니 인근에 있는 재봉 공장들로 부터 구입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해방촌은 한국 전쟁 이후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재봉틀을 돌리며 살아갔던 많은 이들의 삶이 녹아 있는 곳이기도 하죠. 현재에도 재봉 공장이 아현동과 서울 몇몇 곳에 남아 있는데요. 해방촌도 그 대표적인 지역 중 하나입니다.






타인의 책꽂이는 살펴보는 건 항상 재밌는 일이에요. '이 사람은 어떤 책들을 인상깊게 보며 살았을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영화, 만화, 여행 등등 다양한 책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그리고 한 쪽 구석에서 아까의 의문에 대하 힌트를 조금 얻어 갑니다. 여행 책들 중에 베트남 편이 딱 눈에 들어왔죠.






각종 DVD와 함께 커피에 대한 책들도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요. 제법 두꺼운 책들 부터 생두와 머신에 대한 책 까지 필요한 알찬 구성을 하고있는 책꽂이네요.






참 재미있었던 것은 바로 이 더치커피!

슬쩍 색이 변해버린 더치커피 병 뚜껑이 감상의 포인트죠.






성냥도 진지하게 3천원에 판매 중이에요. 






그러던 중에 커피가 준비되었습니다. 베트남 연유가 바닥에 깔리고, 베트남식 도구를 통해서 내린 커피가 그 위에 올라갔는데요. 아주 멋진 레이어를 이루며 준비된 커피가 먹음직해보입니다. 옆에 준비된 숟가락을 사용해서 휘휘 저어볼까요.






그리고 한번 맛을 보죠. 물론 연유 덕분에 달긴 하네요. 캐러멜 마끼아도 정도의 당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고소한 커피의 맛과 함께 혀를 감는 연유의 단맛.


한국의 다방 커피와 조금은 유사하면서도 맛의 성향은 다릅니다. 베트남식으로 커피를 추출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믹스 커피보다는 물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미끌하고 가벼운 바디를 가지고 있는데요. 혀 뿌리를 강하게 스치며 지나가는 커피의 맛이 재미있네요.






사실 다른 커피들도 다 맛보고 싶었는데요. 오늘은 커피 약속이 많은 날이어서 커피를 더 마시면 곤란할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을 시계와 함께 내려놓을 수 밖에요. 커피는 더 맛볼 수 없었지만 잠시 시간의 흐름마저 내려놓고 여유를 즐겨봅니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그림이 딱!






잠시 한번 스치듯 지나치기엔 아까운 공간 콩밭커피로스터를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잠시 눈에 들어온 북을 봤더니 왠 고양이가...x꼬에서 도깨비(?)를 낳고 있어요. 아- 이 기묘한 상상력이란 도대체 뭐죠? 으하하- 라고 잠시 웃어봅니다. 한번 북을 쿵쾅쿵쾅 두드려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저는 사회화된 자아이니 오늘은 조금 참으렵니다.






해방화폐라고 하는 지역 화폐 사업에도 동참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콩밭을 나와 서울N타워를 바라보며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합니다. 숙대입구역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는데 사실 제법 가파른 길이긴 해요. 처음 찾아가시는 분들에게는 미지의 여행이 될지도 모르니 첫 방문에는 버스를 타는 방법이 나을 수도 있어요.






맑은 날은 아니었지만 저물어 가는 태양이 서울을 축복하는 몹시 멋진 풍경을 해방촌을 떠나며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402번 버스를 타고 저는 저 자신만의 해방을 위해 해방촌의 콩밭을 떠나갑니다.

아! 콩밭커피로스터는 월요일은 휴무, 화수목 12:00-21:00, 금토일 12:00-23:00이 운영시간입니다. 찾아가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해방촌을 찾아간 커피찾는남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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