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커피와 로스팅

ROR (Rate of Rise)

Coffee Explorer 2023. 4. 25. 00:29

 

1. ROR이란 무엇인가?

ROR은 Rate of Rise의 약자입니다. 로스팅에서 BT(Bean Temperature)의 변화 외에도 BT ROR을 보는 것은 도움이 되는데요. ROR을 통해서 로스팅의 흐름을 비교할 수도 있고, 온도 상승의 정도 변화를 보다 큰 폭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BT 그래프는 이전보다 좀 더 빠르게 온도가 상승하거나, 조금 느리게 상승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도드라지게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BT ROR은 올라가거나, 유지되거나, 하락하면서 로스팅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로 인해서 BT ROR 그래프를 통해 로스터는 BT의 변화에 대해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2. ROR은 기본적으로 꾸준히 하락하는 모양을 가진다.

로스팅 전체 과정에서 BT ROR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꾸준히 하락하는 모양을 가지게 됩니다. 자연스러운 BT ROR의 하향 흐름은 다음과 같은 원인 때문입니다. 초반의 높은 BT ROR은 생두와 드럼의 큰 온도 차이로 인해, 전도를 통해 생두의 빈 온도가 빠르게 상승합니다. 하지만 이때의 BT는 실제 빈 표면 온도와는 큰 오차를 가지게 되는데, 경우에 따라서 최대 50℃까지도 높게 나올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초반의 높은 BT ROR은 일정 부분 과장된 수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팅 초반은 가장 빠르게 커피의 온도가 상승하는 구간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을 것 같습니다. 로스팅 머신의 BT 측정 역학에 따라 다르지만 BT 120-150℃ 사이에 커피의 실제 표면 온도가 100℃를 넘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Pressure Build-Up Inside Packages Containing Wet Intermediate Level Radioactive Waste due to Thermal Loads. 2012.

로스팅이 진행되면서 생두 표면에서의 수분 증발로 인해 생두 내부의 수분은 점차 줄어듭니다. 수분은 지질과 함께 생두 내 에너지 전달의 주요한 매개체입니다. 따라서 생두의 온도가 올라갈수록 매개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에너지 전달 효율은 낮아집니다. 로스팅 과정에서 생두 내부는 화학반응의 결과로 수증기를 비롯한 다양한 기체들이 압력을 생성합니다. 최대 10bar 가까이 오르는 압력으로 인해 생두 내부의 끓는 점은 180℃까지 올라갑니다. 이런 원리로 생두 내부의 수분은 180℃ 가까이에서도 계속해서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사실 생두가 내부의 기체 압력으로 인해 부피가 커지는 것은 에너지를 받아들일 표면적이 커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초반에 비해 높은 BT ROR을 갖기에는 부족입니다. 도리어 수분이 보호해주니 못한 상태에서 생두의 표면이 건조되어 버릴 리스크만 커집니다. 그래서 로스터는 로스팅 초반 정도로 생두와 드럼 내부 온도가 차이를 유지하게 화력을 계속해서 더 높이지도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로스팅 중/후반은 초반에 비해 낮은 BT ROR을 갖는 모양새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1차 크랙 등의 발열 시기와 2차 크랙이 가까운 지점에서는 나타나는 BT ROR은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스팅 머신 안에서 커피는 버너로 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지만,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에너지 중 일부를 수분과 함께 방출합니다. 방출하는 것보다 공급받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커피의 온도는 로스팅 과정에서 상승합니다. 1차 크랙이 다가오면서 커피 내부의 수분이 기체로 상변화를 위하여 잠열의 형태로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이로 인해 커피의 온도 상승은 느려지고, ROR은 하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3. ROR, 하강하지 않으면 문제일까?

로스팅을 BT ROR의 패턴과 모양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ROR의 패턴은 자신이 사용하는 로스팅 머신 한 대의 프로파일만을 상대 비교했을 때에는 비교적 유용하지만, 다른 머신의 프로파일을 보고 참고할 때는 의미없을 때가 많은 비교입니다. 앞서 ROR은 기본적으로 꾸준히 하락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ROR이 하락하지 않고 유지되면 안 되는가?’라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로스팅 초기에 ROR이 최고점을 찍은 이후 하락하는 모양이 만들어졌다가 다시 상승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로스팅 도중 커피의 수분이 적어진 상황에서 ROR의 과도한 상승은 커피 겉면이 타는 등 부정적인 결과를 낼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커피의 종류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ROR이 유지되는 형태로 로스팅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ROR은 무조건 하강해야 한다는 원칙을 먼저 세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반복해서 나타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4. 1차 크랙과 ROR

로스팅 도중 ROR이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주로 1차/2차 크랙과 함께 발생하는데요. 로스터는 1차 크랙이 다가올 때부터 화력을 줄여서 로스팅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이를 전승해왔습니다. 화력을 줄였다고 하지만 로스팅 초반에 비해 로스팅 머신 내부의 드럼이나 공기의 온도는 지속적해서 높아져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줄어들고 있던 ROR은 이전만큼 하강하지는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 어느 정도의 ROR을 유지하기도 하고, 오히려 어느 정도의 폭으로 올라가는 일도 있습니다.

 

미국의 스캇 라오(Scott Rao)는 크래쉬(Crash)와 플릭(Flick)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이런 현상을 막았을 때의 이점에 관해 설명하곤 합니다. 스캇 라오는 자신의 저서에서 해당 현상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만, 정작 원인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많은 로스터가 그의 조언을 참고해서 해당 ROR 패턴을 피해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대안 역시 전승과 경험적인 수준에서 제시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플릭이 발생하기 약간 전에 화력을 미리 줄이는 것과 크래쉬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화력을 높여두는 정도죠.


로스팅에서 커피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추론하자면 이렇습니다. 커피 로스팅이 진행되면서 커피 내부의 수분은 압력으로 인해 더 높은 끓는 점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1차 크랙이 가까워지면서 커피 표면 가까이에서는 이미 수증기가 상당한 압력을 가진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압력은 커피의 외형을 키우는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수증기가 만들어내는 커피 내부의 압력, 압력이 낮추는 물의 끓는 점이 커피 내부에서 창과 방패처럼 맞서는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1차 크랙은 순간적으로 이 기체들이 커피의 약한 곳을 통해 폭발적으로 빠져나가며 발생합니다. 수증기가 커피의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커피 내부의 압력은 다시 낮아지고 끓는 점이 낮아집니다. 이로 따라 더욱 많은 수분이 더 빠르게 끓으며 기화되어 빠져나갑니다. 수증기가 커피를 팽창시키며 물리적으로 커피를 부수고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소리가 발생합니다. 1차 크랙 직전 수분 방출이 일시적으로 멈춘다는 스캇 라오의 설명에는 이론적 설명이나 데이터 제시가 없습니다.

 

플릭과 크래쉬가 큰 폭으로 발생하는 것은 생두의 균일성이 높거나 너무 빠른 로스팅, 강한 화력 등의 원인 때문입니다. 생두가 밀도, 재배고도, 스크린 사이즈 등에서 균일할 때는 그렇지 않은 상황에 비해 1차 크랙이 훨씬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1) 1차 크랙 전 하강하는 ROR

1차 크랙 전후의 잠열은 생두가 공급받은 에너지에 비해 커피 온도가 더디게 상승하는 것으로 작용합니다.

 

2) 크랙의 시작점

이후 수증기가 방출되면서 조용한 크랙과 함께 ROR은 소폭 상승하거나 유지됩니다.

 

3) 크랙의 본격화

본격적으로 다량의 커피가 크랙을 일으키면서 방출되는 에너지로 인해서 ROR은 하강합니다.

 

4) 크랙의 후반부

크랙이 전반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수분을 방출한 커피 내부의 압력이 낮아집니다. 이로 인해 커피 내부에서 물의 끓는 점은 더 낮아집니다. 낮은 끓는 점으로 인해 커피 내부 대부분의 수분은 수증기화 되고 로스팅 종료 시점까지 계속해서 수분이 빠져나갑니다. 커피의 온도 상승이 가속화되고 화력을 낮추지 않으면 ROR은 상승하기 쉽습니다.

 

 

5. 플릭(Flick)과 크래쉬(Crash)

“플릭(Flick)과 크래쉬(Crash)가 로스팅 결점이냐?”고 묻는다면 “아닐 수도 있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 된다면 결점 혹은 생두의 잠재력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한 로스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결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결점이 될 플릭과 크래쉬 정도는 커피나 장비 그리고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능평가 없이 시각적인 프로파일 형태로 결점을 단정하면 곤란합니다. 플릭과 크래쉬가 그래프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나타나고, 로스팅 후 맛 봤을 때 결점으로 인지된다면 수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플릭(Flick)과 크래쉬(Crash)가 나타나는 중요한 원인은 생두의 균일성입니다. 생두가 균일하다니 따지고 보면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두 외에도 에어플로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에어플로우가 강한 상태에서 플릭과 크래쉬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 편입니다. 공기의 흐름은 로스팅 중 커피의 수분을 비교적 더 원활히 가져가고, 크랙 전후 커피가 방출하는 수분과 에너지도 더 많은 공기에 쉽게 흩어집니다.댐퍼를 여는 등의 방식으로 에어플로우를 더 강하게 하는 것은 플릭이나 크래쉬로 인한 결점 가능성을 낮추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6. ROR에 매몰당할 것인가, 활용할 것인가?

BT를 기준으로 하는 ROR은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BT가 커피의 실제 표면 온도와 상당한 오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스팅 머신의 설계나 부품에 따라 오차는 달라지게 되니, 다른 머신을 사용하는 사람과 나의 ROR을 같은 숫자로 생각하면 곤란한 것은 당연합니다. “1차 크랙에서 ROR은 몇 이하여야 한다.”는 조언은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다만 상대방의 로스팅 머신에서의 1차 크랙 발생 온도, 배출 시까지의 온도 상승 등을 참고해서 BT의 기준을 잡아간다면, 자신의 로스팅 환경에서 어느 정도의 ROR 목표를 정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ROR 그래프만 보면서 판단하는 경우 초보자는 잘못된 판단을 할 때도 많습니다. 기본적인 커피의 변화 흐름을 토대로 ROR을 살펴보면 이런 오판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1차 크랙이 시작될 때의 높은 ROR을 우려해서 화력을 낮출 때의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차 크랙이 진행되면서 ROR이 낮아질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화력을 낮추게 되면, 지나치게 낮은 정도까지 ROR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로스팅 머신의 드럼이 가질 수 있는 열용량이나 에어플로우에 따라 운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머신에서는 화력을 꺼야만 원하는 정도의 ROR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반대의 상황도 가능합니다. 1차 크랙이 진행되면서 ROR이 하강하는 것을 보고, 지나친 ROR 하강을 막으려고 화력을 높이는 상황이 그렇습니다. 이 판단이 정확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면 ROR의 하락을 적절히 막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1차 크랙의 중반을 지나며 ROR이 상승하게 됩니다.  화력을 높이고 로스팅 머신 내부의 온도를 높이는 것과 커피 ROR의 자연스런 상승 시기가 맞물리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ROR이 낮아지려고 할 때 화력을 낮춰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ROR이 높아지려고 할 때 화력을 더 높여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ROR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며, ROR은 부정확한 데이터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맹신하면 곤란합니다. 다만 자신의 로스팅 머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BT의 변화를 좀 더 섬세하게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할 때, BT ROR의 정보는 상당히 유용할 수 있습니다. 로스팅에 좋은 참고가 될지 ROR 정보에 매몰되어 판단이 흐려질지는, 로스터 자신이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지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