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찾는남자 / Coffee Explorer
상미 기간을 고려한 로스팅 본문
상미 기간이란?
상미기간(賞味期間)'은 영어로는 'BBD(Best Before Date)라고 흔히들 번역하는 것 같습니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텐데요. 커피에서 참 많은 사람이 상미 기간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언제까지 먹을 수 있어요?"
"향이 날아가서 스스로 만족 못하겠다 싶으면 그만 드시면 되죠."
커피(원두, 추출 전 상태)는 미생물이 쉽게 번식하지 않는 낮은 수분 함량과 수분 활성도 덕분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변질로 인한 인체 유해 가능성이 높지 않은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보관하면서 추출해서 먹는 것이 가능한데요.
식품위생법상으로는 유통기한을 1년 이상으로 설정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대량으로 유통되는 원두 중에는 유통기한을 2년으로 설정한 경우도 과거에는 많았죠. 다만 맛과 향으로 즐기는 기호 식품이다보니, 향이 날아가서 더이상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이제 그만 먹을 때가 된 것이겠죠.
상미 기간을 고려한 로스팅
상미 기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데요. 상미 기간을 고려해서 로스팅한다고 하면, 어떤 방법/방향이 존재할까요?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천천히 로스팅하는 것입니다. 빠른 로스팅에서는 지질 산화 등의 이유로 상미 기간이 짧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빠른 로스팅의 결과로 더 많은 양의 가스가 원두 내부에 발생하는데, 이 가스가 원두 밖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휘발성이 강한 일부 향미 물질이 빠져나가면서 더 빠르게 산화될 수 있죠. 1
사실 그동안 여러 차례 글을 통해서 스페셜티 커피에서 빠른 로스팅의 장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는데요. 생두 고유의 개성을 강하게 표현한다는 관점에서는 분명 빠른 로스팅의 장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빠른 로스팅에서 자칫 자극적일 수 있는 맛의 경향에 대한 부분도 지적한 적이 있는데요. 커피 한 잔에서의 균형을 위해서는 조금은 여유있는 시간대로 로스팅해도 괜찮습니다.
한 발 나아가 한 잔의 커피에서 느끼는 강한 특성보다 상미 기간을 더 중요시 여기는 방식의 로스터라면 더 긴 시간의 로스팅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교를 위한 실제 로스팅 프로파일
물론 어느 정도 천천히 로스팅 해야할지는 사용하는 생두의 종류와 로스팅 포인트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빠른 로스팅과의 비교를 위해서 8분, 10분, 12분 정도에 완료하는 프로파일로 로스팅해서 원두를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더 확실한 차이를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 격차를 벌려서 로스팅을 해봐도 괜찮습니다.
3배치 모두 850g을 투입했고 175/165도의 기본 예열 온도에 초기 화력 10/7.5(열풍/할로겐), 교반 속도 8로 유지하다가, 155도에서 화력을 각각 6/7/8로 조절한 결과입니다.
생두 : 코체레 내추럴 예가체프 G1 (알마씨엘로 수입)
Lighttells CM-100 색도계를 시용해서 3종의 샘플이 거의 같은 색상이 되도록 로스팅을 완료했습니다.
A. 8분대의 로스팅
- 투입 시 화력 : 10/7.5
- 화력 조절 : 155도에서 8/7.5
- 총 로스팅 시간 : 8분 30초
- 배출 : 187도
B. 10분대의 로스팅
- 투입 시 화력 : 10/7.5
- 화력 조절 : 155도에서 7/7.5로
- 총 로스팅 시간 : 10분 00초
- 배출 : 184도
C. 약 12분 로스팅
- 투입 시 화력 : 10/7.5
- 화력 조절 : 155도에서 6/7.5로
- 총 로스팅 시간 : 11분 40초
- 배출 : 182도
4) 비교 결과
A는 가장 강한 향을 가진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다만 라이트 로스팅에 가까운 상태였는데, 분쇄 향을 맡아보니 단향은 좋았지만 제 개인적 기준에서는 조금 원두의 내부가 덜 익은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브루잉을 통해 맛을 보니 자극적인 산미와 함께 곡물의 느낌이 공존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로스팅하되 조금만 배출온도를 높였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B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커피였습니다. 덜 익은 느낌이 없는 적절한 로스팅 포인트도 좋았고, 어느 정도의 산미와 이를 받쳐주는 단맛 덕분에 균형이 좋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C역시 B와 비교해서 큰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는데요. 굳이 비교하자면 조금 단향을 덜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구분하기가 어려운 편이었습니다.
A와 B, 그리고 B와 C는 상호 구분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적어도 A와 C는 선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테스트하는 사람과 사용한 생두, 배출 포인트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적어도 2분 이상의 로스팅 시간 차이가 발생해야 명확하게 그 차이를 인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A 는 가지고 있던 향의 개성이 상대적으로 일찍 줄어드는 것 같았지만, 세 커피 모두 3주 가까운 시간동안 충분하게 상업적 판매가 가능한 컨디션을 유지했습니다. 15분 가까운 로스팅 프로파일도 테스트해보고 싶었지만, 준비했던 생두의 재고가 충분히 않았는데요. 일정 시간을 넘어서부터는 상미 기간은 충분하지만, 로스팅 이후에 느끼는 향의 강도가 조금 부족한 경험을 저는 해왔습니다.
정리하며
그동안의 로스팅 경험을 바탕으로 로스팅 시간을 추천한다면, 제 경우에는 향의 강도를 더 중요시 한다면 7-10분, 부드러운 균형은 9-12분, 추출의 용이성과 긴 상미 기간은 11-14분 정도의 로스팅 시간을 추천할 것 같습니다.
배출 온도 역시 상미 기간에 영향을 줄 텐데요. 그렇지만 상미 기간을 고려해서 로스팅 배출 포인트를 바꾸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배출 온도가 주는 커피 맛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겠죠.
상미 기간을 위해서는 로스팅뿐만 아니라 원두의 보관도 매우 중요합니다. 상미기간을 위해서는 특별히 온도의 변화가 없는 곳에 원두를 보관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 경우에 특별한 원두는 와인셀러에 두고 곧장 사용할 소량만 꺼낸 이후에 즉시 원두를 다시 집어넣습니다.
샤를의 법칙에 따르면 '압력이 일정할 때 기체의 부피는 온도에 따라서 일정하게 증가하는데요. 커피가 여러 온도 변화를 겪게 되면 커피 내부의 가스와 휘발성 향미 물질의 부피가 변화하면서 원두 세포벽의 붕괴를 만들고, 그 결과로 상미 기간이 줄어드는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2
그 외에도 상미 기간에 대해 고려해야 할 부분이 어떤 게 있을까요? 항상 고민하며 로스팅하는 여러분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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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방법에 대한 질문이 들어와서 답변을 추가합니다.
안녕하세요. 답변을 드리면, 기본적으로 모든 원두는 봉투에 담아서 와인셀러에 보관했습니다.(17도 세팅) 1일차에는 일반적인 크라프트 재질의 지퍼가 달린 원두 봉투 보관, 2일차에는 개별 원두 30g씩을 지퍼백으로 옮겨 담았습니다. 1일차에는 디게싱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아로마 밸브는 달려있지 않습니다.)
원두의 장기 테스트에서 한 곳에 모든 원두를 담아두게 되면 잦은 개폐로 인해서 신선한 공기가 계속해서 공급되고, 결과적으로 산화를 촉진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상미기간이나 향미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소분 포장 후에 테스트를 하게 됩니다.
저는 원두별로 약 15개의 샘플을 소분 포장하고(30g x 15개) 2일에 한번씩 테스트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별도로 VOCs(휘발성유기화합물) 측정기를 통해서 분쇄시의 향미 강도 데이터를 기록했지만, 제가 사용 중인 제품이 고성능이 아니어서 수치는 참고로만 했습니다.
첨부한 사진은 설명을 돕기 위한 것으로 이 콘텐츠(상미 기간 테스트)와는 별개의 테스트 장면입니다. 감사합니다.
- 글 : 커피찾는남자(Coffee Explorer)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