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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 추출 시간의 자유를 말하다. 본문

커피와/추출

스페셜티 커피, 추출 시간의 자유를 말하다.

Coffee Explorer 2016. 9. 26. 02:14

과거 커피 교육자들은 브루잉 커피 추출에 적당한 시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추출이 너무 길어지면 과다 추출이 일어날 수 있고, 잡미가 느껴진다는 이야기들을 해왔는데요. 사실 정말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추출의 이론을 제시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고,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 대해서 자유로이 여러분의 다른 의견을 남겨주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D

 

 

 

에스프레소에서의 추출 시간

 

에스프레소 추출에 있어서 우리는 추출 시간에 대해 이상적인 시간을 적절한 폭으로 교육해온 것 같습니다. 그 폭은 아무리 넓히거나 좁혀도 15초 보다는 길고 50초보다는 짧은 시간일텐데요. 간혹 아주 실험적으로 2분 여 동안 에스프레소 추출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상업적 활용을 고려해서 에스프레소 추출에 있어 1분을 넘어가는 세팅을 찾기는 어려운 편입니다.

 

에스프레소의 경우 추출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추출수가 보충되며 에스프레소의 농도가 연해집니다. 추출 시간을 늘이기 위해서 분쇄도를 얇게 조절할 경우 바스켓 필터 구멍보다 작은 알갱이들이 에스프레소에 포함되는 비중이 높아지는데요. 과하게 얇은 분쇄 입도를 뚫고 추출하기에는 압력을 가하기 위한 장치들의 일반적인 스펙이 감당하기 힘든 저항이 만들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고려해서 대부분의 에스프레소는 20-45초 사이의 시간 동안 추출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브루잉에서의 추출 시간

 

브루잉에서 추출 시간은 과거 농도계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 농도를 추정해볼 수 있는 대체 추정 방식 중의 하나였을텐데요. 물 붓기의 패턴을 비슷하게 유지한다면 대부분의 추출 시간은 분쇄도에 의해 결정되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추출 시간은 곧 분쇄도를 의미하고, 이것이 곧 최종적인 커피 농도와의 개연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추출 시간이 길어지면 과다 추출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과다 추출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보편적인 과다 추출은 높은 추출 수율을 말하는 편입니다. 다만, 한 잔의 커피에서 입자 별로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다/과소 추출이 아니라고 부르는 추출에서도 미분과 같은 입자는 가진 성분 대부분을 잃는 과다 추출이 일어난 상황이죠. 상대적으로 큰 입자에서의 평균적 과소 추출과 합쳐지면서 평균적으로는 먹을만한 커피가 만들어지게 될 겁니다.

 

과다 추출이라는 것은 단지 추출 시간이 길다라기 보다는, 다양한 입자가 만들어내는 성분의 비율이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깔끔함을 넘는 수준에 도달한 추출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추출수의 온도가 높다면 1분의 추출에서도 과다 추출로 인지하는 지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 4분이 지나도 과다 추출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추출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드립에서는 추출 시간이라는 것이 바리스타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완전히 독립적인 요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단번에 더 많은 양의 물을 부어서 커피 입자들이 드리퍼의 하단에 상대적으로 큰 저항을 만들지 않고 추출수와 함께 떠있게 한다던지, 물의 무게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추출이 빠르게 일어난다던지 등의 방법을 통해 분쇄도와 추출 시간을 어느 정도 조절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커핑 / 침지에서의 추출 시간

 

커핑/침지에서는 바리스타가 보다 자유롭게 추출 시간을 콘트롤할 수 있습니다. 사실 커핑을 생각해보면 추출의 시간이 길다는 것이 딱히 큰 단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장점으로 해석할 부분도 있습니다. 커핑을 위해 1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물을 부어놓았다고 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커피의 주요한 향미가 같은 원두를 드립으로 추출했을 때에 비해 크게 적거나 약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도리어 커핑에서 맛과 향이 더욱 풍성했다는 주장도 자주 접할 수 있는데요.

 

커핑은 자연스럽게 추출의 온도(추출수와 원두가 추출 용기 안에서 만나서 이루게 되는 현탁액의 온도)가 상당히 빠르게 하락하다가 이후에는 천천히 식어간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특성은 대부분의 커핑볼이 두꺼운 세라믹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과 커피가 최초에 높은 온도에서 만나지만, 커핑볼로 전도되는 열과 공기 중으로 발산하는 열로 인해서 추출의 온도가 급격히 초기에 하락하는 증상을 보입니다.

 

그리고 일정 부분 온도가 떨어진 이후에는 오히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그 온도가 유지되는 편인데요. 이런 온도의 변화는 커핑에서만 느껴지는 커피의 맛과 향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요소일거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커핑 / 침지에서의 잡미

 

커핑에서 대부분의 커피가 잡미가 난다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필터링을 하지 않은 커피이기 때문에 부유하는 커피 입자로 인해서 커피의 질감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인데요. 도리어 커핑에서 경험한 커피가 더 맛있다는 주장에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긴 시간 커피 추출이 이뤄지는 커핑/침지 방식의 장점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볼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잡미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닐까 싶은데요.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커핑에서 어떤 커피에는 잡미, 어떤 커피에는 다채로운 맛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보면 결국 추출 방식이 잡미를 결정하기 보다는 가지고 있는 생두와 원두의 품질이 잡미일지 다채로운 맛일지를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커핑이나 침지 방식의 추출이 가진 특성에 대해서 종이 필터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원두에 있던 오일 등의 성분이 그 주요한 원인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좀 더 구체적인 설명과 접근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 주장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드립과 침지

 

시간이 지나면서 추출 온도가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온도에 따라 원활하게 추출되는 성분의 균형이 다채로와지면서 복합적인 향미를 즐기는 것이 커핑이라고 설명해볼 수 있을텐데요. 반면에 드립은 분쇄도가 주요하게 결정하는 상대적으로 짧은 추출 시간과 그 때 보편적으로 형성되는 현탁액의 온도, 순차적인 물의 공급에 따른 균형이 만들어내는 상대적으로 적은 폭의 현탁액 온도 변화를 가지게 됩니다.

 

원두 중량의 약 10% 정도를 차지하는 오일과 지질 등의 성분은 순수한 물이 추출하지 못하는데요. 물이라는 극성용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두를 얇게 분쇄해서 그 표면적이 충분히 넓은 상태에서는 수용성 고형물들을 단 시간에 녹여서 충분한 농도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데요. 실제로 상당히 진한 농도인 1.3-1.4% TDS를 10-20초의 단 시간에 운동에너지를 가해서 추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필터링을 하려면 상당히 더 긴 시간이 걸리고 그 때 추가적인 추출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추출의 결과물은 관능적으로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하면, 커핑이라는 상황에서 온도와 시간의 조합이 만들어낸 추출 조건이 오히려 비극성 물질들의 추출을 도와서 향미 추출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두고 누군가는 잡미가 덜하거나 더하다, 혹은 풍성하거나 풍성하지 않다가 말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고, 사람마다 다른 상대적 기준들인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침지에 있어서 추출의 긴 시간은 단지 과다 추출을 만들어내는 부정적 요소라기 보다는 커피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맛을 추출해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침지가 아닌 핸드드립에 있어서도 추출 시간을 상당히 길게 늘이는 방법은 가능합니다. 조금씩 물을 더해가는 방식으로 추출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추출 온도(현탁액의)는 낮게 유지되면서 추출이 이뤄지는데, 같은 분쇄도에서 전통적인 추출을 한 커피와 농도는 물론 맛의 성향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런 성향의 차이는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다르며 어떤 경향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현탁액의 온도가 평균적으로(논점을 간소화하기 위해서) 85도에서 추출된 같은 농도의 커피가, 현탁액 평균 온도 70도에서 추출된 커피와 상당히 다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데요. 결과적으로 85도에서 추출된 커피에 비해 70도에서 같은 농도로 추출했다면 분쇄도는 더 가늘어지고 추출 시간은 더 늘어났을 것입니다.

 

 

 

생각을 정리하며

 

품질이 뛰어난 스페셜티 커피에 있어서 보다 다양한 온도와 시간이 만들어내는 추출 상황이 단지 잡미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추출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훨씬 적극적으로 추출의 온도와 추출의 시간을 변화시키며 연구하는 태도로 커피를 추출하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시도이고, 공부가 되는 접근이었습니다.

 

커피는 워낙 단일 변수를 조절하며 연구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추출의 모든 부분을 한 눈에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어려움이 오히려 커피의 세상을 항해하는 즐거움이고, 우리가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커피를 공부해가는 동력이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커피 추출에 대한 다양한 상상과 실험이 바리스타들의 일상에 즐거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근래 해왔던 커피에 대한 생각들을 하룻 밤에 정리한 글이기 때문에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대로 이 글은 추출의 이론을 제시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고, 추출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나열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 대해서 자유로이 여러분의 다른 의견을 남겨주셔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 커피찾는남자(Coffee Explo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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