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바리스타 챔피언쉽

2019 KBrC 위국명 바리스타 시연 배경 소개

Coffee Explorer 2019. 1. 15. 23:24

도전의 시작

저의 커피 브루잉 탐험 목표는 극단의 원재료를 이용해서 한 잔의 최고인 커피를 만드는 것에 있다기 보다는, 보다 지속적/상업적인 방식으로 손님들에게 제공할 커피를 제공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있습니다.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 있는 도전인데요. 그래서 입상 자체 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의미있는 메세지가 있었는지가 저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여러 차례 글에서 이야기해오고 있지만, 저는 에스프레소 바탕의 아메리카노는 원두가 가진 고유의 개성을 잘 표현하는 음료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스페셜티 커피의 개성을 잘 표현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난다면 제 편견을 바꾸겠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의 경우 개성을 잘 표현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아무도 먹지 않는 음료이죠.


모두가 아메리카노만 먹는데 아메리카노에서는 커피의 개성이 잘 구분되지 않으니 더 좋은 재료라고 해도 소비자 입장에서 굳이 사먹을 필요가 없죠. 그러다 보니 더 좋은 스페셜티 커피의 보급에 있어서 아메리카노는 넘어야할 일종의 벽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브루잉 방식의 커피는 아메리카노에 대한 일종의 대안일 수 있는데요. 현실적으로는 몇 가지 문제가 있죠. 원재료비는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문제는 생산성인데요. 커피 한 잔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고, 넓은 의미에서 이것도 일종의 원가라고 해석할 수는 있을 겁니다.


긴 시간 어떻게 하면 브루잉을 쉽게 할까, 빨리할까, 균일하게 할까? 이런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카페의 지속 가능함을 위해 생산성과 품질 사이에서 적정한 균형을 갖추기 원했습니다. 상업적 공간에서라면 설령 맛에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 아닐지라도 생산성을 위해 일부를 내려놓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커피 추출의 공부는 크게 두 방향입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한 아메리카노를 원두의 개성을 더 잘 살리는 방향과, 브루잉 커피는 생산성을 향상 시키는 방향으로 공부하는 것이죠.




브루잉 대회를 향한 도전

커피 관련 대회를 지켜보면서 현장과 너무 괴리가 크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습니다. 현장에서 안 하는 자료, 현장에서 안 쓰는 재료, 현장에 없는 너무 오버하는 프리젠테이션! 물론 대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인정 받아야 하고 어느 정도 대회라는 것이 상징성을 띄고, 산업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독창적인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유독 한국의 브루어스컵을 보면서는 '컨셉추얼한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시도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브루어스컵이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돌이켜 보면, 이 대회는 전기를 사용하는 도구를 최소화하고 브루잉 방식의 추출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세계 브루어스 대회는 화려한 커피의 향연, 한국의 대회는 마치 컨셉의 경합처럼 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KBrC 공식 규정이 말하는 고객 서비스와 상당히 다른 서비스가 한국의 브루어스컵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일이 많다는 인상을 받아왔습니다. 아래 규정을 다시 한번 읽어봐주시길.


심사위원님, 당신께서 높은 점수를 준 그 고객 서비스가 아래의 브루어스 공식 규정에 과연 합치하는 것인가요?


"참가자들에게 복잡한 기술이나 고급 식당에서의 서비스 같은 경험을 기대하기 보다는 실제 커피 산업에서 기대할 수 있을 법한 현실적인 서비스인지를 평가한다."

<KBrC 공식 규정 19.3.2 고객 서비스>


그런 고민 가운데 너무 과한 서비스, 너무 많은 자료보다는 단순함/담백함으로 프리젠테이션을 만들었습니다.




대회에서 사용한 브루잉 방법에 있어서 너무 긴 시간이 걸리는 방법은 가급적 제외하려고 했습니다. 현장에서 사용하기 힘든 방법이니깐요. 특히나 이번 대회에서 사용한 도구와 추출 방식은 생산성에서 큰 장점이 있었습니다. 추출 시간이 딱 1분 걸리는 것이니 아메리카노 제조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지만, 기존의 핸드드립과는 비교할 수 없죠.


게다가 더 중요한 생각이 있었으니.... 제가 사용한 방식은 일반적으로 브루잉에 사용되는 리테일 그라인더가 아니라, 에스프레소 그라인더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 엄청난 생산성이 있습니다. 미토스원 같은 그라인더를 이용해서 빠르게 연속으로 브루잉을 할 수 있습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대체하는 형태로 연속적으로 브루잉을 할 수 있다면, 아메리카노를 대체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생두/원두. 3년째 치르고 있는 브루어스컵에서 제가 계속 사용하고 있는 생두는 1만원 중반대의 가격입니다. 현장에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커피의 가격이죠. 대부분의 선수들은 평균적으로 1kg 당 20~30만원에 달하는 커피를 사용하고 있으니 제 커피에 비하면 15~20배 정도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특히나 이번 대회에서 사용한 커피는 현재 제가 컨설팅 중인 아우어베이커리에서 실제 사용하고 있는 커피입니다. 정확히는 나카메구로 블랜드의 40%를 차지하는 원두이죠.


물론 다음에 제가 다시 대회에 도전한다면 조금은 더 가격대를 높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시장은 변하고 있고 브루잉 전문 매장에서 3만원 전후의 커피도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죠.




도전과 실패의 원인

이번 대회에서 제가 얻은 실패는 꽤나 값진 수확이었습니다. 제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오신 분이라면 내용을 자세히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에스프레소 정도의 분쇄도로 미분 중심의 브루잉 추출을 한다는 것. 특별히 대회라는 상황에서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수성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브루어스컵 출전 선수는 분쇄를 시연 중간이 아닌, 백룸에서의 준비 시간에 하게 됩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한국 대회나 세계 대회에서 시연 중에 분쇄를 한 선수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백룸에서의 분쇄하면 시연 내용에 따라 약 30~35분 정도 후에 추출을 하게 되는데 이때 향미 손실이 아주 크죠.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그것을 감수하는 선택을 하는데, 에스프레소 정도의 분쇄도를 사용하는 제게는 감수가 불가능한 선택인 것이죠.


문제는 시연 중에 분쇄하면서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연습할 때는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강한 정전기가 분쇄 시에 발생했죠. 태어나서 생전 처음 보는 수준의 정전기, 스푼 모서리에 커피 입자가 뽀족하게 서있었습니다. 마치 자석에 철가루를 붙여둔 것 같은 모습. 스푼으로 에어로프레스에 커피 가루를 담는 순간 에어로프레스의 표면으로 입자가 순식간에 퍼져나가더군요.


결국 시연 중에는 다양한 실수가 이어졌고, 에어로프레스 표면에 붙어 있던 커피 입자가 심사위원의 컵에 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예선 탈락일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본선에 진출 했더군요. 턱걸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턱걸이로 본선 진출!




자, 이제 저에게 주어진 최대의 숙제는 정전기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본선 진출 결과 발표는 저녁에 났고, 다음 날 시연은 아침 이른 시간이었으니, 해결책을 찾는데 쓸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습니다.


문제는 백룸에서 연습할 때는 그라인딩해도 심한 정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무대에 설치된 그라인더가 특별히 온도나 습도, 바닥의 재질 등에서는 백룸의 환경과 차이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첫번째 원인은 '접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할 수 있는 해결 방법이 없었습니다.(접지가 원인이 아닐거라는 의견도 주변에서 해주셨습니다.)


대회의 규정상 추출과 무관한 가습기를 무대에 설치할 수도 없는 노릇. 간접적으로 추출에 영향을 주는 도구라고 우기려고 해도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지 확인하는게 당장 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단순했지만 향미의 손실과 변화 때문에 우려했던, 원두에 물을 미리 조금 뿌리는 방법을 결국에는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두 가지, '백룸에서 원두에 분무기로 물(공식수)을 뿌리고 약 30-35분이 지난 다음에 분쇄를 하게 되는데, 이 때 향미와 입자의 분포가 어떻게 변할지?', '의무 서비스에서는 분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해야하나?'였습니다. 공식수가 담긴 주전자의 물을 스푼으로 채취해서 원두의 묻혀주는 방법도 있으니 일단 의무서비스에 대한 고민은 제껴두기로 결정!


물을 뿌리고 나서 향미와 입자 분포가 변하는 문제는 미리 테스트를 했습니다만, 실제와 같이 30분까지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0분 정도만 기다린 후에 분쇄하고 추출해서 맛을 봤는데, 이 정도면 허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이게 아주 큰 오산이었습니다. 실제 시연에서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Photo_Blackwaterissue

실제 본선 시연에서 원두에 물을 뿌린 뒤에 약 30분이 지난 후에 그라인딩을 하고 나니 정전기는 없었습니다. 덕분에 시연은 무사히 원활하게 진행되었죠. 문제는 커피의 향미 변질, 그리고 입자 분포 변화로 인해서 제가 의도한 맛에서 완전히 벗어난 커피가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대회가 완전히 끝나고 스코어 시트가 발표된 이후에 점수를 보고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죠. 사무실로 돌아와서 재현을 해보니 역시나 커피의 맛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요약 : 미분 중심 브루잉 추출 - 시연 중 분쇄 - 정전기 발생 - 물 뿌려서 해결 - 향미 변질/입도 분포 변화 - 관능 부분에서의 실패


이런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를 다 읽어주셨을 분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기록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번 외쳐봅니다. 이상 커피익스플로러 바리스타 위국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