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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의 시대에서 커피의 시대로 본문

커피와/이야기

숭늉의 시대에서 커피의 시대로

Coffee Explorer 2014. 12. 2. 11:49

* 이 글은 거의 3년 전에 제가 다른 공간에 써두었던 글을 다시 가져온 것입니다.


요즘은 너나 할 것없이 식후에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커피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디저트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커피 이전에는 어떤 것으로 우리의 식탁을 마무리 해왔을까요? 우리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즐기던 고유의 전통 디저트라고 하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단연코 숭늉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통의 디저트 숭늉

 

사람들이 언제부터 숭늉을 만들어마시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숭늉은 반탕(飯湯) 혹은 취탕(炊湯)이라고도 하는데, '임원경제지'와' 계림유사(鷄林類事)'등의 기록을 통해 고려 초나 중엽부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밥은 물과 쌀을 솥에 넣고 물이 없어질 때까지 익히는 방식으로 만듭니다. 이 때 가마솥에 수분이 남아 있는 동안은 가열을 계속해도 100℃ 이상이 되지 않지만 뜸 들이는 과정에서 수분이 증발하여 솥 바닥의 온도가 200℃이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 후 쌀에 갈변이 일어나고 전분이 분해되면서 포도당과 구수한 냄새의 성분이 생기게 되고, 여기에 물을 붓고 끓이면 구수한 맛의 숭늉이 되죠.

 

숭늉은 아마도 식량이 귀했던 시절 솥에 눌러붙은 쌀과 보리 등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깨끗이 떼어먹고 나서 설겆이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특유의 구수한 향취는 뜨거워진 수분이 증발하면서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했을테고 이 때문에 숭늉 제조법은 빠른 속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숭늉이 있어서 일본·중국에서 성행된 차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입니다만 중국에서도 누룽지는 유명한 먹거리 중 하나죠.

 

 

 

숭늉과 커피 사이

 

헌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숭늉은 왠지 커피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숭늉

커피 

 재료

곡물 (쌀)

곡물 (커피 콩) 

 가공

건식

건식 및 습식

 로스팅

삶다가 수분 증발 후 구워짐

 불에 구움

 추출

재료를 물에 담그고 끓여서 성분을 추출

재료를 물에 넣고 끓이거나,

이 투과하며 성분을 추출함 

 

숭늉에 들어가는 각종 곡물(쌀, 보리 등)들을 로스팅하고, 분쇄하여 추출하는 재미난 상상을 해봅니다. 노릇한 쌀 드립 숭늉, 구수하고 진뜩한 보리 에스프레소, 각종 쌀 종자들이 흥미롭게 블랜딩 된 '숭늉', 라이스 그레이더들이 모여서 숭 늉 커핑을 하는 등. 숭늉을 현대식 음료로 재 탄생 시킨다면 혹시나 커피를 넘어설 만한 기호 식품이 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국내 재배가 불가능한(상업적인 면에서) 커피보다는 숭늉 쪽이 왠지 애정이 가는데요?


물론 세계적인 식량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긴 하겠지만 주식으로 먹을 수 없는 곡물인 커피를 넓은 땅에 경작하는 저개발국 농민들이 쌀을 대신 심는다면 자급자족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상당하겠다는 막연한 상상까지 해봅니다.

 

 

 

취사 도구가 바뀌어가면서 점차 사라져..

 

한편, 한국에서 숭늉이 사라지게 된 것은 취사 도구가 개발되고 바뀌어 가면서 쇠 솥에서 취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던 누룽지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압력 밥솥, 전기 밥솥 등의 잘 코팅된 재질의 용기가 누룽지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누룽지는 전통 간식거리로 재 발견되기도 합니다. 가끔 식당에서 디저트로 숭늉이 나오기도 하는데 공장에서 제조된 누룽지를 다시 물에 불려 숭늉으로 만든다고 하니 왠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숭늉과 커피. 오늘은 왠지 커피보다 숭늉이 한 사발 땡기네요. 오랜만에 걸죽한 국물의 숭늉이나 마셔볼까요~? 그 뒤에 저는 승늉 에스프레소가 가능한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실험을 했죠. ^^

http://coffeexplorer.com/268



참고글

[주영하의 음식 100년](10) ‘1000년의 구수한 맛’ 숭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