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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영복 교수, 2006년 대학강단 마지막 강의를 기억하며

Coffee Explorer 2016. 1. 16. 02:50

2006년 6월 8일은 신영복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님이 정년을 맞아 고별 수업을 가졌던 날입니다.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이름의 강좌는 당시 매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이 날의 고별 강의는 특별히 9시부터 1시간 동안은 정규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공개가 되었고, 10시부터 1시간은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공개 강좌로 진행되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당시에 수업을 들으며 제가 기록했던 내용의 일부입니다. 개인적인 정리였기 때문에 조금 두서가 없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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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의 시작"

 

땅 속의 시절을 끝내고 나무를 시작하는 죽순의 가장 큰 특징은 마디가 무척 짧다는 것. 이 짧은 마디에서 나오는 강고함이 대나무의 곧고 큰 키를 지탱하는 힘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 마디는 과연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는가? 죽순의 마디는 뿌리에서 배운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나무가 그 뿌리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 개인의 마디와 뿌리의 연대가 숲의 역사를 이루어 낸다.

 

숲이야 말로 홍수의 유역에서 흙을 지키고 강물을 돌려놓기도 하며 뱀을 범접치 못하게 하고, 그늘을 드리워 호랑이(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갈 역량)을 기른다. 설령 잘리어 토막 지더라도 은은한 피리소리로 남고 칼날 아래 갈갈이 찢어 지더라도 수고하는 이마의 소금 땀을 들이는 바람으로 남는다. 나는 어느 뿌리 위에 나 자신을 심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만큼의 마디로 밑둥을 가꾸고 있는가?

 

짧은 마디는 어디에서 왔는가? 뿌리에서 왔다. 뿌리에서 배웠다. 역경의 의미를 재조명하라. 땅 속에서의 어두운 시절을 기억하라. 뿌리는 길다. 뿌리는 연대로 숲은 만들고 이 숲으로 홍수를 막아내고 새 시대를 만들어갈 역량을 만든다.

 

이 글에는 없는 것이지만 '대 꽃'이 있다. 대 숲은 한꺼번에 꽃을 피우며 꽃을 피우면 대나무의 모든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대나무 숲이 사라지게 된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한번은 꽃 피워야 할 꽃. 그 꽃은 무엇인가? 대나무 숲은 살리는 방법이 있다. 하루에 300번씩 흔들어서 바람(시대)를 타게 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과제에 눈 감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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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던지다.


마지막 수업은 89년도 신영복 교수님의 첫 제자가 참석해서 그의 글을 읽으며 강의를 시작했고, 2006년 마지막 제자인 내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의 글에서 그동안 뿌리를 보아왔고 강의에서 줄기를 보았습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선생님의 꽃에 관한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있어 모든 것을 다해 피우고 싶은 꽃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저는 꽃을 피우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 분이 이야기 하실 답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선생님의 입으로 듣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꽃을 피우기 보다 꽃으로 인한 찬란한 마감보다 씨를 만들어 다시금 역사를 이어가고 싶다는 것. 자신은 꽃이 아니라 뿌리가 되고 싶노라고 대답하셨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생명의 연속'이라고 대답하셨다는 선생님의 이야기...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꽃'을 피우고 싶다. 문제는 그 '꽃'이 어떤 '꽃'인 건가? 라는 것이다. 결국 선생님도 씨앗을 뿌리려면 '꽃'을 피워야만 했다. '씨앗을 뿌리는 꽃'을 선생님은 피웠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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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강의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碩果不食)"


인내가 현재의 상황을 무작정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면, 희망은 견디며 곤경의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목의 가지 끝에서 빛나는 가장 크고 탐스런 씨 과실은 그것이 단 한 개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희망이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의 뼈대를 직시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가능성을 키워내는 것이 절망의 괘에서 희망을 읽는 진정한 독법이다. 희망의 언어는 희망을 키워내는 실천의 방법이다.

 

엽락. 먼저는 입사귀를 떨궈야하며 그럴때에 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구조의 직시...그리고는 분본. 떨어뜨린 입사귀로 뿌리를 거름해야 한다. 뿌리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이 필요하다. 입사귀를 떨궈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뿌리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살아나야한다. 그것이 오늘의 과제인 것이다.

 

사람을 길러야한다. 사람은 어떻게 길러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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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


씨는 숲으로 가는 여행이다. 나무가 숲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람이 개인이 아닌 숲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숲은 전체로 서의 완성을 가진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숲은 나무의 완성이다. 숲으로 모이면 작은 나무나 큰 나무나 흠이되지 않는 것이다.


숲은 수많은 나무를 길러내는 시스템으로 한 사회의 리더나 구성원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장으로서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분은 '삶'은 '사람'에서 겹치는 'ㅏ'를 약분하면 만들어지는 단어라고 하시며 직접 약분을 해보이셨다. 나 스스로 삶은 '사랑의 준 말이다'라고 주장해 온 것 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있는 '약분론'인 것이다.

 

가장 먼 여행은(The longest journey) head => heart 로의 여행이다. cool head에서 warm heart로의 여행...이것은 씨가 나무가 되는 과정을 말한다. 더 큰 인간적 애정 속으로 융화된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말한다.


석과불식.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를 '씨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로 읽어내는 것 부터가 희망의 언어의 시작인 것이다.

 

결국 선생님(교수님이라는 호칭보다 잘 어울리는)의 강의를 관통하는 하나의 의식은 '사람그리고연대'이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 그리고 연대'가 아닌 '사람그리고연대'인 것이다. 


(모두에게 공개하는 강의라 그런지 한가지를 더 말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제자들에게만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일거라 짐작했다. 그것은 The other the longest journey 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warm heart 에서 _____ foot 으로의 여행이다. 이것이 바로 나무에서 숲이 되는 과정인데 이것은 우리들만의 비밀로 남겨 놓으셨다. 그리고 '_____ foot' 의 수식어는 앞으로 내가 채워넣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어떠한 '다리'로 나는 살아가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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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짧은 시간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지만 그동안 저희에게 해주신 삶의 조언들을 가슴을 새기고 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진심으로 그동안의 살아오신 삶과 강단에서의 진실함에 감사하며 가슴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많은 선생님의 제자들이 이 땅 곳곳에서 희망의 언어를 말하며 '씨를 뿌리는 꽃'으로 만개한 꽃의 숲을 이어가고 또다시 뿌리의 거름이 되는 '삶'의 '역사'를 이어갈 것을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