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커피와 로스팅

로스팅 속도에 따른 내부 색도의 변화_스트롱홀드 S9

Coffee Explorer 2017. 9. 25. 14:22

로스터가 자신의 로스팅 장비에 익숙해지면 자주 사용하는 프로파일의 유형은 어느 정도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팅은 다양한 선택의 연속인데요. 사용하는 생두가 계속해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숙련된 로스터는 생두의 기본적인 특성을 해석해서,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로스팅을 거친 원두는 '이 정도가 가장 맛있겠다.' 싶은 로스터의 해석과 판단이 어느 정도 들어간 최종 결과물입니다.


로스터가 결정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저는 로스팅 레벨과 함께 로스팅의 속도를 손에 꼽습니다. 로스팅의 속도는 예열 온도와 생두 투입량, 화력의 강도, 배출 목표가 만들어낸 균형인데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주로 화력의 강도에 의해 결정되며 이것은 전체 로스팅 시간에 유기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HTST(high-temperature short-time), LTLT(low-temperature long-time) 로스팅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글을 작성했었는데요. 지난번 글에서는 로스팅 속도에 따른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며 생두의 물리적 팽창을 확인해보았다면, 이번 글에서는 로스팅 속도에 따른 내외부의 색도 차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관련 글 : HTST, LTLT 로스팅 알아보기

http://coffeexplorer.com/554




우리가 로스팅 정도를 이야기할 때 객관적 지표로 사용할 수 있는 지표 중 원두의 색도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색도를 홀빈 상태의 외부만으로 관찰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입니다. 분쇄 후의 색도 역시 단순한 평균값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두의 절단면을 관찰하는 것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충분히 많은 원두 알갱이를 살펴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컬러트랙(ColorTrack)과 같은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면 분쇄 입자의 색도 분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두 상태에서 어느 부분이 상대적으로 더 어둡고 밝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죠. 그렇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홀빈-분쇄 후 색도 차를 주요하게 파악하고, 일부의 원두 샘플링해서 절단면을 관찰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많은 로스터가 배출 시 원두의 온도를 기준으로 로스팅을 진행하는데요. 배출 온도가 어느 정도 로스팅 레벨/원두의 색도에 영향을 준다면 로스팅의 속도 역시 원두의 색도 분포에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저는 이번에 세 가지의 로스팅 방식을 결정하고 그 결과 만들어진 원두의 색도를 측정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로스팅을 했던지 원두의 홀빈 색도가 거의 같은 값이 나올 수 있게 여러 배출 포인트의 로스팅을 했습니다.




1. 로스팅 방식

(모든 배치에서 예열 온도는 175/165, 교반5, 블로워 5로 동일)


1) HTST : 열풍 10/할로겐 10, 배출온도 186.5℃, 총 로스팅 시간 : 5분 46초


2) 화력조절 : 열풍 10/할로겐 10(시작)-6/6(160℃ 도달 시), 배출온도 176.0℃, 총 로스팅 시간 : 6분 42초


3) LTLT : 열풍 6/할로겐 6, 배출온도 175.0℃, 총 로스팅 시간 : 13분 37초


배출 온도가 높을수록 로스팅 레벨이 높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편인데요. 사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인지하는 로스팅 머신 내부에서 생두/원두의 온도는 결국 생두/원두 '표면' 대 열풍 및 복사열 등을 특정한 비율로 측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HTST 방식의 경우 열풍의 온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실제 원두의 온도 대비 어느 정도 높게 측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2. 색도의 차이

(컬러트랙으로 측정한 Agtron 값)


1) HTST : 44.79 / 49.57 / 4.78 (홀빈, 분쇄, 색도 차)

2) ----- : 44.91 / 48.19 / 3.28

3) LTLT : 44.98 / 47.50 / 2.52


"HTST는 LTLT보다 홀빈-분쇄 색도간의 차이가 컸다."

홀빈 상태에서의 색도는 0.19 정도의 차이만을 보일 정도의 세 배치의 색상은 거의 같았습니다. 하지만 분쇄 원두의 경우 어느 정도 차이를 보였는데요. HTST의 경우 4.78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면, LTLT는 2.52로 가장 적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HTST와 동일 화력으로 로스팅을 시작했지만 중간에 화력을 약화 시킨 경우에는 색도 차가 3.28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LTLT 보다는 큰 색도 차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결과는 배출 온도가 얼마인지, 1차 크랙 이후 디벨롭을 몇 도에서 얼마나 유지하냐에 따라 색도 차가 역전되는 등 다른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핸드드립용 원두 로스팅에서 홀빈-분쇄 후 색도를 역전되게 만드는 일은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결과로 보자면 로스팅 속도에 따라서 내외부의 로스팅 색도/레벨에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으리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커피 로스팅은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에너지를 전달해서 생두의 조직 전체를 변화시켜 가는 과정입니다. 강한 화력이라고 할지라도 생두 조직 내부에 깊숙하게 침투해서 조직을 변화시키는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합니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겉은 적당한데 속이 덜 익거나, 속은 적당히 익었지만 겉은 이미 너무 어둡게 로스팅 될 수도 있습니다.




3. 로스팅 속도는 선택의 문제


저는 로스팅의 속도를 기본적으로 로스터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HTST 에서 나타나는 높은 가스생성비, 큰 부피, 큰 공극률, 낮은 밀도, 더 높은 추출 수율 등의 특성 외에도 상대적으로 내부의 색도가 밝다는 것을 인지하며 로스팅하려고 합니다.


더 느린 로스팅의 경우 balanced, fruity, nut-like, toasty의 경향이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Britta Folmer, The Craft and Science of Coffee. 2017, p262), 전체 로스팅 시간이 길어지며 자연스럽게 마이야르 반응 구간이 길어졌다는 사실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결과와 고민을 토대로 HTST에서는 의도적으로 내외부의 색도 차가 넓게 벌려둔 채로 로스팅을 종료할 수도 있고, 2) 번에서와같이 색도 차이를 좁히기 위해 배출 일정 시점 이전에 화력을 조절해서 디벨롭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상대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의 향미와 함께 의도하지 않은 덜 익은 커피를 맛볼지도 모르죠.




정리하며


과거의 로스팅 서적들을 보면 화력과 함께 댐퍼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책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댐퍼를 이용해서 특정 향의 취사선택이 가능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요즘 세대의 로스터들은 댐퍼의 역할을 과대해석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아예 댐퍼가 없는 로스팅 머신도 많습니다. 또, 과거처럼 특정 향미의 선택을 목적으로 사용한다기보다는, 전체 로스팅 과정에서의 공기 흐름을 어느 정도로 결정하려는 의도로 댐퍼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로스팅 지식에서 댐퍼와 관련한 부분들을 제외하면, 화력과 속도는 로스팅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로 무게감 있게 다가옵니다. 로스팅의 속도가 원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양한 방식과 관점으로 계속해서 고민하고 실험해보는 것은 로스터 각자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 글/사진 : 커피찾는남자(Coffee Explorer)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