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커피를 말하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말하다

Coffee Explorer 2016. 9. 18. 01:11

자격, 자격증에 대하여


자격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자격증은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에 대해 공신력을 갖춘 기관에서 증명의 서류를 통해 인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현재 한국 커피 시장의 자격증은, 앞서 말한 전통적인 자격과 자격증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우리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서 '자격, 자격증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격이 없어도 되는 일에 대한 자격증을 따고 있다면 이것은 기이한 일입니다. 왜 이런 바리스타 자격증 바람이 한국에 있는 걸까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일선 바리스타 입장에서는 손님이나 사장님이 자격증 소지 여부를 자주 물어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는 반응도 있더군요.하지만 직업적 바리스타가 아닌 대중까지도 스펙 쌓기의 연장선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현상은 분명 씁쓸한 일입니다. 한국에서의 자격증 열풍은 불안한 미래를 위한 대비이거나, 과거에 취업을 위해 다양한 스펙을 쌓아야 했던 태도가 자연스레 몸에 베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외의 특정 나라에서 카페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위생 등에 대한 교육이 핵심이 되는 교육을 이수해야 하지만, 한국에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현재의 제도권이 인증하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필수적인 것은 아닙니다. 사실 직업이든 취미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과하게 다수의 사람이 몰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격증이 자격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차별됨, 희소성이 필수입니다. 희소성과 변별력이 사라진 채 남들이 다 가지고 있어서 나도 취득해야 하는 것이 자격증이라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한국의 다양한 기관/단체/협회에 기대하는 것


저는 한국의 일부 사단법인과 해외의 기관들이 교육하고 인증하는 제도에 대해서 무조건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단체들의 교육이 조금 더 보완되고 방향을 잘 설정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커피와 무관한 대중까지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는 문제를 두고, 저는 단지 사단법인이나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먼저, 사단법인이 지속가능성을 위해 하는 영리 사업의 방향이 '다수의 자격증 취득'이 최우선 순위에 있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더 많은 대중이 커피에 대한 교양을 익히고 이를 통해 한국의 커피 산업이 질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교육과 관련해서는 용어를 조금만 변화시켜도 어감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느낌들이 상쇄 되는데요. 대중을 위한 커피 교양이라면 자격증이라는 형태보다는 별도의 소양 교육과 '이수/수료' 정도의 용어와 개념이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반면, 제대로 된 바리스타나 트레이너를 훈련하고 양성하는 과정이라면 자격증의 형태를 띠지 못할 이유 역시 없다고 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교육의 질적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젠가는 한국에도 해외 커피 연구 기관에 준하는 인력과 설비를 갖춘 학술 기관이 만들어져서, 신뢰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의 커피 기술과 지식이 진일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다양한 단체와 기관/협회들이 힘을 모아서 국가 차원으로 이런 학술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커피 공부란 무엇일까?


최근 여러 바리스타와 이야기하면서 커피를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요. 커피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더군요.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는 중에, '정말로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여러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대학은 물론 커피 관련 교육 기관의 과정을 수료한 이들조차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커피 관련 교육 기관을 넘어서 한국의 전반적인 교육이 제대로 작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의 교육 과정은 많은 사회 문제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인 것 같습니다. 한국의 의무 교육 목표는 매우 높게 설정되어 있지만, 암기가 아닌 이해와 창의 영역에서 한국 학생의 성취도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동기 부여가 없는 입시를 위한 주입식 교육이 그 주요한 원인일텐데요. 학문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야 할 대학에 졸업장과 같은 스펙만 원하는 이들이 가득 모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할 줄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잘 교육 받은 사람의 특징을 두고 저는 '스스로 공부해나갈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대학에서 정말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개론 서적 읽기 - 스스로 질문 하기 - 질문에 대한 답을 추정해보기 - 질문 관련 내용에 대한 다른 사람의 견해 찾기(책, 논문, 지인, 인터넷) -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검증하기(오류가 없는지 확인) - 보다 나은 검증 방법 제시 - 새로운 가설 세우기 - 가설에 대한 검증 방법 생각하기 - 시도해보기 - 바른 결론 내기



도제식 교육에 대한 생각


커피에 대한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일본의 영향을 받았던 도제식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유형의 교육은 비과학의 영역에서 문화와 정신을 계승하며 가르치기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어떻게?'와 같은 질문이 자칫 잘못된 것에 대한 해결이 아니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기 쉬웠던 과거의 한국의 커피 교육 문화에 비추어 볼 때 좋지 않은 영향도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기초적인 지식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될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는 다시금 도제식 교육의 장점이 빛을 발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시점에는, 과하게 노하우(know-how)에 의존했던 우리의 지식 체계를 노와이(know-why)로 바꿔가는 과학적 교육이 더 우선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바리스타 자격을 넘어서


한국 커피 산업은 질적인 성숙과 성장을 가장 큰 과제로 가지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바리스타들의 지속 가능한 고용과 준비된 카페 창업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좋은 교육이 좋은 사회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틀이듯, 좋은 커피 교육 역시 좋은 커피 산업과 문화를 만드는 기틀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다시 한 번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커피 교육이 이런 부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중에게는 자격증보다는 교양과 취미에 대한 이수/수료증을, 바리스타를 위한 전문 교육에는 균형 잡힌 자질 배양을 목표로 하는 것이 한국 커피 산업에 절실합니다.


- 글 : 커피익스플로러 (Coffee Explo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