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생각

애초에 미생, 완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Coffee Explorer 2014. 12. 14. 00:45

-미생(未生) : 미생은 바둑 용어로 해당 돌이 아직 완전히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말함.

-완생(完生) : 바둑에서 쓰이는 용어로, 외부를 향한 활로가 막혀도 죽지 않는 상태의 돌을 말함

-사석(死石) : 바둑에서 어떻게 두어도 잡힐 수밖에 없어 죽게 된 돌을 이르는 말.

 

 

 

 


애초에 완생이라는 표현이 필요하지 않은,

그래서 존재 자체가 이미 ‘생(生)’이었던 우리는

어느새 ‘미생’처럼 여겨지는 사회 질서가 잉태해

'미생'으로 여기는 인생들을 만들어내고

'완생'을 꿈꾸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

 

사실 애초에 완생은 없었다.

우리 모두 존재하는 순간부터 ‘생(生)’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아무리 미생이 없다고 주장하려 해도

마치 미생이 있는 것 같다 여겨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지만

기쁘다고 완생이고, 슬프다고 미생일까?

높다고 완생이고, 낮다고 미생일까?

사회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것 마냥 느껴졌던 미생의 삶.

나는 그토록 애타게

내가 미생과 완생의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하고 싶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태어난 순간부터 생(生)이었다.

그 누가 나에게 실체가 없다며 존재를 나타내라고 요청할 때에도

나는 그저 숨을 쉬는 것 만으로 충분히, 충만한 생(生)이다.

 

혹여나 상대적/사회적/계량 가능한 가치와 부가

나에게 과거보다 더한 것이 채워진 듯 느껴질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나는 여전히 완생과 미생을 부정하는 일개 생으로 남으리.

 

우리는 모두 생이다.

우리는 모두 살아있다.

우리는 모두가 사람이다.

인격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은

생으로 태어나 '사석'이 되어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고 '생'이 스스로를 ‘사석'으로 자각하고 사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을

지나치게 앞서 고민하는 일종의 교만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우리 모두가 완벽한 생이었고, 완벽한 사석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혹은 사회 속에서

미생으로 여겨지며

 

완생을 꿈꾸며 살아야 하는가?

 

사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무게가 우리 스스로를 잊게 만든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그렇다는 것을 기억해야

비로서 인생을 바라보는 균형이 견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