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공간

2012년 6월, 폴 바셋 방문기.

Coffee Explorer 2014. 9. 13. 21:45


저는 커피숍을 방문하면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기록을 남깁니다.


이것은 2012년 6월 폴 바셋의 한 매장을 방문했을 때 남겨둔 기록인데요. 이 노트를 읽다보니 과거의 마셨던 커피 한 잔이 다시금 생생히 기억나네요. ^^


------------


근 반 년 만에 폴바셋 매장을 찾았다. 이제는 아는 직원들도 보이지 않지만, 예전의 포근했던 기억들을 찾아 폴바셋에 갔다. 그저 잠시 여유를 누리고자 찾은 커피숍이지만 직업 정신을 투철하게 살려서 매장 곳곳을 살펴보던 중 눈에 들어왔던 몇 가지들을 기록에 남긴다.

 


폴바셋 바리스타들의 특징? 커피퍽은 제거하지 않고 포터필터의 온도 유지를 위해 그대로 두는 편. 에스프레소 추출을 위해 퍽 제거 후 린넨으로 가볍게 필터 내부를 닦아낸다. 여기서 의문 하나! 에스프레소 추출 이후 에스프레소가 지나간 흔적들에 지속적으로 열이 가해지면 좋지 않은 향취가 포터 필터 통로들에서 발생하게 된다. 커피 퍽을 제거하지 않는 방식은 이때 발생한 좋지 않은 향취들을 씻어내지 않는다는 면에서 큰 단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린넨으로 닦아낼 수 있는 영역은 고작해야 필터의 전면 부에 불과한데다, 필터 후 면과 스파웃 전반에 눌어붙은 에스프레소 흔적을 왜 관리하지 않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최소한의 물을 흘려서 해당 부위를 청소하는 것보다 내부 보일러 온도 유지를 우선적으로 삼은 것 때문인 듯 한데, 현재 해당 지점 상황에서 조금은 최적화되지 않은 면이 있어 보인다. 체인점의 한계 때문일 수 있지만 시간대 별 상황에 맞는 관리까지 볼 수 없어서 조금의 아쉬움은 있다. 아마도 이것은 다른 브랜드에서 라면 기대하지 않았을, 폴바셋이기 때문에 기대감일 것이다.

 

다음으로 바리스타는 자동 그라인드에 포터필터를 갖다 대고 원두를 담아낸다. 포터필터를 바닥에 두 세번 강하게 내려쳐서 많은 양의 원두가 고르게 필터에 담길 수 있게 돕고 있다. 1차 탬핑 이후 벽 면에 붙은 원두를 털어내는 탭핑에서는 탬퍼의 무게가 그대로 실리고 있다. 자칫 1차 탬핑에서 형태를 갖춘 커피 퍽이 포터필터 벽면에서 떨어지면서 물길을 형성하여 추출 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동작이다. 하지만 폴바셋의 에스프레소 시연을 직접 보았을 때도 그는 강하게 탭 했었고, 음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일단, 폴바셋 스타일로 받아들여 보아야겠다.

 




 

내가 주문한 음료는 아이스 룽고. 폴바셋 스타일의 아이스 룽고는 리스트레또 2샷을 준비된 얼음과 물에 희석해서 손님에게 내온다. Regular 사이즈로 주문을 해서 그런지 작은 컵 크기에 비해 빨대의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길다. 컵보다 빨대의 길이가 1.5배는 더 길다. 갈증 난 입에 커피를 한 모금 빨아 마신다. 강한 커피의 향미가 입을 적시며 올라온다. 짙은 적갈색의 커피,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원두를 사용하고 리스트레또로 추출할 때에만 느껴지는 맛의 밸런스, 역시 폴바셋이다.

 

안심하고 커피를 즐기려는 찰나 갑작스레 좋지 않은 느낌들이 혀 끝을 덮쳐온다. 생두 감별 시 사용하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고무 타이어의 떫은 감과 산 미의 어중간한 조합. 커피 맛은 금세 입 안에서 사라져 잊혀지고 목 구멍에 약간의 통증만 남아있다. 약간의 호기심으로 바리스타에게 말을 걸어본다. 나는 요즘의 폴바셋 커피 블랜딩이 이런 방향으로 바뀐 것인지, 단순히 바리스타와 오늘의 추출 상황에 따라 달라진 맛의 차이인지 궁금해졌다. 해당 바리스타는 추출 사람에 따른 맛의 편차를 잠시 설명하다가 곧 다시 한 잔의 커피를 뽑아주기로 했다.

 

한 10분 쯤 시간이 지났을까? 바리스타는 새로 만든 커피를 내어준다. 다시 가져온 커피는 전보다 신맛이 상당히 강하면서도 좀 더 깊은 맛을 가지고 있다. 추출 시간과 원두 사용량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보다 꽉 찬 바디..하지만 과거에 느끼던 화려한 과일 느낌의 폴바셋 룽고는 아니다. 짙은 결명자의 느낌이랄까? 신맛부터 부드러운 커피의 뉘앙스까지 바리스타는 원두가 가진 잠재력 대부분을 이끌어낸 듯, 더 이상은 로스터와 생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리해내는 시스템이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산미로 시작한 맛의 향연이 강한 커피의 뉘앙스를 자랑하다가 살짝 구수한 맛으로 입 안에서 정리된다. 최고의 맛은 아니지만 바리스타의 정성과 열정이 담긴 커피 한 잔이다.

 





 

여러 차례 커피를 마신 무렵, 바리스타가 찾아와서 커피의 맛을 묻는다. 나는 있는 그대로 바리스타에게 여러 느낌들을 설명한다. 바리스타의 응대가 좋다. 

 

조금씩 더 커피의 맛을 느끼려는 찰나, 내가 한국을 떠나있던 기간 동안 음향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예전에 들려오던 것과 새삼 다른 분위기가 귀를 통해 전해진다. 뚝 떨어지던 간결한 직접 음 위주였던 공간의 음향이 이제는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저음과 반사음들 덕분에 조금의 운치가 있기도 하다.

 

좋은 음악과 함께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 다시 어디론가로 떠나야 할 시간. 커피와 함께 하는 긴 긴 여행이다.